'파과' 감독 "이혜영, 두려움에 포기 선언도…날 원망했을 것"[인터뷰]①

민규동 감독 라운드 인터뷰
"이혜영, 몸 꼿꼿해…손 떨어도 눈빛은 20대"
"이혜영 캐스팅, 이 영화 만들 수 있겠구나 안도도"
"이혜영, '미워하는 것 같다' 원망도…고행 각오했다"
  • 등록 2025-04-29 오후 3:52:15

    수정 2025-04-29 오후 3:52:15

[이데일리 스타in 김보영 기자] 민규동 감독이 결코 쉽지 않았던 ‘파과’의 영화화 계기와 각색 과정, 기적과도 같았던 이혜영의 캐스팅, 액션 등 우여곡절 많던 이혜영과의 작업 등을 털어놨다.

민규동 감독은 영화 ‘파과’의 개봉을 하루 앞두고 29일 오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파과’는 바퀴벌레 같은 인간들을 처리하는 조직에서 40여 년간 활동한 레전드 킬러 ‘조각’(이혜영 분)과 평생 그를 쫓은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김성철 분)의 강렬한 대결을 그린 액션 드라마다. 구병모 작가의 동명 베스트셀러 소설을 영화로 각색했다. ‘허스토리 ’, ‘내 아내의 모든 것’,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드는 장르의 연금술사 민규동 감독이 연출한 신작이다. 특히 레전드 킬러 ‘조각’으로 분한 이혜영과 미스터리한 킬러 ‘투우’로 변신한 김성철이 섬세한 감정과 강렬한 액션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소설 ‘파과’의 원작 팬들이 많고 이전에도 영화화에 대한 요청은 많았으나, 현실적으로 60대 여성이 주인공으로 액션까지 소화해야 하는 원작의 설정상 이 작품을 상업영화로 만들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란 반응이 많았다.

민규동 감독은 쉽지 않은 도전에 위험을 감수하고 원작의 영화화를 택한 계기를 묻자 “원작자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하셨던 거 같다. 제가 처음 원작을 읽었을 땐 작품이 절판 위기에 놓여있었지만, 스스로는 숨겨진 보물을 건져내는 발견의 재미를 느꼈다”며 “초고는 과거 없는 현재의 서사로만 정리했었다. 사실 소설에 과거 이야기가 많이 녹아 있어 이야기 전개가 어렵더라. 새로운 반전, 각각 인물들의 동기를 충실히 합리적으로 만들려 노력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장르적으로는 완전히 액션 영화로서 하드보일드한 장르에 충실한 영화가 되어야만 이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구나 싶었다. 제목도 낯설고 주인공도 너무 새로웠기에 제작자 분들이 그 전까지 영상화 시도를 했지만 그만큼 실패도 많이 하신 것 같았다. 제 감독 친구들도 소식을 듣고 전화를 해줬다. ‘나도 너무 하고 싶은데 자기가 하네? 응원한다. 근데 어렵지 않아?’ 그런 이야기도 나눴던 기억”이라고 털어놨다.

이 영화의 최종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과정은 물론, 주인공의 캐스팅 과정도 도전이었다. 민 감독은 “완전히 도파민과 스펙타클로 가득한 노골적 액션 영화로만 만들기엔 원작에 좋은 에센스가 숨어져 있는 만큼 묘한, 드라마 가득한 액션을 해야겠다 생각했다”며 “처음 소설 읽었을 때는 근미래의 마을에서 틸다 스윈튼이 킬러로 일하는, 그런 한국의 지하세계 자경단의 느낌을 상상 했다. 그게 막연한 첫인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그래서 봉준호 감독에게 ‘나 시나리오 쓰면 틸다에게 전해줄 거죠?’ 물어도 봤다. 봉준호 감독님이 ‘물론이죠’라고 대답도 해줬다. 첫 이미지는 그렇게 시작했다”며 “하지만 실제로 들어가 보니 이게 왜 만들어지기 힘든지 알게 됐다. 연기할 배우가 없더라. 그 정도의 액션은 평생을 준비해야 가능한 수준에 단기간 트레이닝으로 소화 가능한 이미지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혜영 선배를 만났을 땐 이 영화가 비로소 태어날 수 있겠구나, 어쩌면 텍스트보다 풍성한 선물이 되어줄 수 있겠구나 안도했다”고 고백했다.

이혜영에 대해선 “실제 몸도 꼿꼿하시다. 하지만 자리에서 일어나실 땐 ‘아이고’ 신음을 하시더라. 손을 떠실 때도 있었으나 눈빛만큼은 20대 못지않게 형형히 빛났다. 내면 외면의 부조화와 카리스마, 사랑스러움이 동시에 보였다”라며 “오랫동안 이 영화가 기다려온 분 같다고 생각했다”는 찬사를 보냈다.

하지만 이혜영과의 작업 과정은 쉽지 않았다. 민규동 감독은 “영화가 안 나오면 내가 저주를 받겠구나 싶었다. 사실 선배님이 촬영하며 몇 번씩 못하겠다며 포기하신 적도 있다. 영화를 그렇게 혼자 끌고 가본 경험이 너무 오랜만인데다 캐릭터의 중층적 맥락을 다 표현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으셨다”며 “특히 액션에서 관객들의 눈이 너무 높은 걸 아셨다. 본인 역시 가짜 액션을 보시면 불만족스러워 하셨다. 그래서 불안과 두려움에 벌벌 떠셨다. 리딩도 한 번은 끝까지 못하고 ‘나 못할 거 같다’며 주저 앉으셨다. 그런 선배님의 공포감 서린 에너지가 오히려 너무 좋은 자세라 생각했다”고 떠올렸다.

또 “특히 본인 목소리에 콤플렉스도 있으시고 지적도 많이 받으셔서 목소리를 고치고 싶으시다고 하셨다. 나의 모든 걸 스스로 싫어하시는 면도 있으시다. 근데 저는 그 모습이 너무 좋고 이 이상한 판타지 세계의 전설적 존재의 아우라와 너무 잘 어울린다고 느꼈다”며 “실제 액션을 봤을 때는 남성적 액션이 아닌 것을 준비했기에 막 외워서 준비하진 않았는데 실제 현장 왔을 때의 순발력이 대단하셨다. 그 순발력은 연습량에 비해 정말 타고났다고 생각했다. 너무나 다행스러웠다. 스태프들도 사실 모두가 의심의 눈초리를 가졌었다. 감독이 설계한 액션과 콘티는 화려한데 그걸 배우가 소화할 수 있을까. 배우 자신도 그에 대한 의심을 느끼셨고 자기 증명을 위해 부단히 헌신의 힘을 다하셨다”고 극찬했다.

아찔한 부상의 연속에도 스스로의 두려움을 연기 에너지로 승화한 순간도 목격했다. 민 감독은 “촬영장서 배우님 손에 불이 붙기도 했다. 벽에 튄 탄피가 가스총에 붙어 불로 번졌는데도 곧바로 불을 끈 뒤 ‘괜찮다’ 하시며 달려나가시더라”며 “올해 제가 영화한 게 30년짼데 마지막 액션 컷을 끝내고 나선 저도 모르게 눈물이 터져 나왔다. 오열이 안 멈춰서 창피해서 도망을 갔다. 내 자신마저 이 영화를 끝낼 수 없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구상한 설계와 배우가 만나 생기는 불가능을 매일 확인했지만, 결국은 끝내고 난 뒤 마치 새로 태어나는 걸 확인하는 감정을 느꼈다”며 “선배님이 최근까지 홍상수 감독 영화를 하셨어서 자유롭게 즉흥 연기를 하시다가 표준계약서 시대, 주52시간 근로제의 현장에 놓이셨다. 하루 몇 컷씩, 타이트하게 촬영을 완수해내야만 했던 무시무시한 프로덕션 조건을 처음엔 이해 못 하셨는데 그걸 제가 책임지고 끌고 가다 보니 제 속도가 너무 빠른 거다. 배우가 저에게 멱살 잡혀 끌려오시니 ‘이런 경험 처음이고 감독이 나를 너무 안 사랑하는 거 같다’고 하신 적도 있다”고도 털어놨다.

다만 그는 “선배님의 그 말에 저는 정말 초월적으로 사랑한다. 이렇게 사랑하지 않으면 포기를 하는데 포기를 못하겠다고 말씀 드렸던 기억이 난다”며 “베를린에서 영화 볼 때 선배님이 처음으로 마음이 풀리신 거 같았다. ‘아 이게 이런 영화였구나. 고됨 끝에 이렇게 구원받았구나’ 느끼신 것 같았다”고도 덧붙였다.

또 “나를 향한 원망이 부상과 함께 정점에 달하셨을 거다. 그럼에도 만들어지지 않는 것보단 고통이 낫다고 당시 생각했기에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다”라고도 당시의 판단을 설명하기도 했다.

액션을 소화하지 않는 선택지도 물론 있었다. 민 감독은 “저는 할 수 없는 걸 억지로 시킬 수 없다고 생각했다. 마음으로 품지 않으면 가짜를 전시하는 게 들킬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액션이 없으면 없는 대로, 이혜영 선생님이 걷는 행위만으로 충분한 액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라면서도, “그런데 선생님이 시간이 지나 겁을 점점 내려놓고 조금씩 육체적 고행에 익숙해지시더라. 그럴 때 ‘좀 더 우린 넘어가보죠, 갈 수 있는데까지 가보죠’, ‘안돼요 계속 해야 해요. 될 때까지 가보는 거죠’ 그렇게 말씀을 드리며 액션신의 강도를 서서히 올려갔다”는 자신만의 디렉팅 노하우(?)도 공개해 웃음을 안겼다.

민 감독은 “이혜영 선배님을 표제로 내세우고 이 영화를 만들겠다 했을 때부터 이 게임의 조건은 ‘고행’이라고 생각했다. 끝없이 미움 받으면서 사랑을 받아내야 하는 건 감독으로서 쉽지 않은 도전이며, 사실 나 역시 끝까지 자신을 향한 의심 속에서 작품을 만들어나간다”고도 고백했다.

한편 ‘파과’는 오는 30일 개봉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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