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한때 공공건축 혁신의 상징과도 같은 도시였다. 2011년 도입한 공공건축가 제도는 기획과 기본구상 단계부터 민간전문가를 참여시키는 방식으로 공공사업의 의사결정 구조를 바꾸었고 현상설계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제도적으로 담보했다. 더 나아가 신진건축가를 대상으로 한 지명공모를 통해 새로운 세대를 발굴하고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찾동) 사업을 통해 생활 사회간접자본(SOC)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성과를 만들어냈다. 이후 ‘꿈을 담은 교실’, ‘우리동네 키움센터’로 이어지며 공공건축은 시민의 일상 속으로 깊숙이 스며들었다. 이 모든 과정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공공건축을 통해 얼마나 빠르게 진화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사례였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지금 서울은 그 선도적 위치를 잃어가고 있다. 제도는 유지되고 있지만 활력은 눈에 띄게 떨어졌다. 젊은 건축가들 사이에서 “서울에는 참여할 만한 공모가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회자하는 현실은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그 배경에는 명확한 구조적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첫째는 과도한 집중이다. 인구 1000만 명에 육박하는 거대 도시를 단 한 명의 총괄건축가가 총괄한다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여기에 200여 명의 공공건축가가 존재하지만 연간 100건에 달하는 공모를 실질적으로 관리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둘째는 운영의 분산이다. 상당수의 공모가 자치구 단위로 흩어져 개별적으로 운영되면서 민간전문가 제도의 핵심 가치인 일관성과 투명성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일부 사업은 제도의 보호 밖에서 ‘그들만의 리그’로 굴러가고 신뢰는 점점 약화한다.
물론 이러한 쏠림 현상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하나의 공모에 수십 개 팀이 몰리면서 발생하는 막대한 기회비용은 사회 전체로 보면 결코 작은 손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축가들이 특정 도시에 몰리는 이유는 분명하다. 공정한 시스템에 대한 믿음, 그리고 그 안에서 실력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는 확신 때문이다. 서울이 잃어버린 것이 바로 이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근본적인 재편이 필요하다.
둘째, 공공건축가 역시 구 단위로 재구성할 필요가 있다. 10명 내외의 소규모 전문가 집단이 지속적으로 사업을 관리할 때 전문성과 책임성이 함께 강화된다.
셋째, 서울시 총괄건축가의 역할을 전략적으로 재정립해야 한다. 개별 사업에 대한 개입을 줄이고 국제공모나 국가적 프로젝트와 같은 상위 스케일의 과제에 집중하는 것이 보다 합리적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양이 아니라 질이며, 절차가 아니라 신뢰다. 공공건축은 단순한 시설 공급이 아니라 도시의 품격을 형성하는 공적 자산이다. 민간전문가 제도는 그 품격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자 동시에 가장 강력한 도구다.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부분적인 보완이 아니라 구조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다. 제도가 다시 작동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고 그 결단은 곧 실행으로 이어져야 한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지금은 방향을 바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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