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약사 삼촌'은 어떻게 홀로코스트 가해자가 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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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우슈비츠의 약사입니다
퍼트리샤 포즈너|388쪽|북트리거
  • 등록 2020-11-25 오전 5:55:04

    수정 2020-11-25 오전 7:47:35

[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1944년 5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막 도착한 루마니아계 의사 베르너는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인물과 만나게 된다. 같은 동네에서 약국을 했던 카페시우스가 바로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친근한 ‘약사 삼촌’이었던 카페시우스는 나치 장교가 돼 집단 학살과 생체 실험, 수감자를 대상으로 한 비양심적인 절도 등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르고 있었다.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이 떠오르는 영화 같은 이 이야기는 놀랍게도 실화다.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심으로 오랫동안 관련 자료를 수집해온 저자가 아우슈비츠에 주임 약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수년에 걸쳐 정보를 수집해 찾아낸 것이다.

저자는 유명 제약 회사 바이엘에서 일하던 ‘사람 좋은’ 영업사원 카페시우스가 어떻게 아우슈비츠에서 끔찍한 범죄를 죄의식 없이 저질렀는지를 낱낱이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개인의 문제가 아닌 시스템의 문제에 주목한다. 거대 화학회사였던 이게파르벤과 나치의 이해관계 속에서 인간성이 말살된 수용소가 생겨난 과정, 그 아래에서 카페시우스 같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범죄를 일삼는 모습을 통해 악이 어떻게 조직화되고 보편화되는지를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흔히 독일은 일본과 달리 과거사 청산에 적극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책 중반 이후에 담긴 검사 프리츠 바우어와 전범자들 사이의 길고 치열한 법정 싸움을 보면 독일 또한 과거사 청산이 쉽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카페시우스는 법정에서 웃음을 터뜨리기까지 했다. 저자는 20세기 중반에 일어난 홀로코스트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내 우리와 다음 세대에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 된다는 경고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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