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선진국 가운데 유일하게 재정준칙을 도입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 재정준칙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조사 대상 126개국 중 4개국이 재정준칙 미도입국으로 분류됐다. 한국은 남아프리카공화국 등과 함께 바로 이 4개국에 속했다. 재정준칙이 만능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마구잡이 재정에 제동을 거는 효과를 기대할 순 있다. 이재명 정부가 재정준칙 법제화를 진지하게 고려하기 바란다.
재정준칙은 재정적자 규모에 마지노선을 긋는 것을 말한다. 5년 전 문재인 정부는 재정적자 폭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3% 이하로 제한하는 국가재정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개정안은 코로나19 위기 속에 갈 길을 잃었고 결국 법제화에 실패했다. 당시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열을 올리던 정치권은 재정준칙을 거추장스럽게 여겼다. 그 결과 문 정부 5년 간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34.1%(2017년)에서 45.9%(2022년)로 올랐다.
이재명 정부도 확장재정에 시동을 걸었다. 내년 예산안은 전년보다 8% 넘게 짰다. “가을에 한 가마를 수확할 수 있다면 씨를 빌려서라도 뿌려야 한다”는 게 이 대통령의 지론이다. 일리 있는 말이다. 다만 빌릴 때 빌리더라도 미리 규율을 정해둘 필요가 있다. 그래야 주머니 사정을 무시하고 흥청망청 쓰는 걸 막을 수 있다. 한국은 국제 기준에 비추면 나랏빚이 아직은 양호한 편이다. 그렇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IMF는 지난달 연례협의에서 우리 정부에 ‘중기 재정 앵커(Anchor)’를 둘 것을 권고했다. 배가 떠내려가지 않게 묶어두는 앵커가 곧 재정준칙이다.
미국과 프랑스는 반면교사다. 미국은 지난달로 끝난 2025회계연도에 공공부채 이자로 지급한 돈이 1조달러를 넘었다. 연방정부 세금 가운데 약 18%는 오로지 빚 갚는 데 쓰인다. 프랑스는 115%를 초과한 국가채무를 뒤늦게 줄이려다 여론의 반발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미·프랑스 사례는 두 가지 교훈을 준다. 먼저 부채 수렁엔 빠지지 않는 게 상책이다. 일단 빠지면 어떤 나라도 헤어나기 힘들다. 또한 구멍이 숭숭 뚫린 재정준칙은 있으나마나다. 이왕 도입한다면 예외는 최소한으로 좁히는 게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