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둘러싼 혼란이 심각하다. 이는 AI를 포함한 지능정보화 기술에 다양한 학습 자료와 학습지원 기능을 탑재한 교과서다. AI 시대에 적응하는 데 필요한 학습 기회를 학생 개개인의 능력과 수준에 맞게 맞춤으로 제공할 수 있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문제는 정부가 그 도입의 수위와 시기 등을 놓고 너무 오락가락하다 보니 일선 교육 현장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낭패를 겪는다는 데 있다. 정부가 교육 현장의 수용 준비가 미흡한 상태에서 도입 정책을 졸속으로 밀어붙인 데다 이에 대한 보수와 진보 양 진영 간 입장 대립이 계속되고 있는 탓이다.
AI 교과서 도입은 윤석열 정부의 핵심 교육정책 가운데 하나였다. 수천억원의 예산을 들여 교과서 개발과 인프라 개설을 추진했고, 올해 1학기에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의 영어·수학·정보 과목에서 시범운영이 시작됐다. 하지만 지난해 말 AI 교과서를 학교에 채택 의무가 없는 ‘교육자료’로 격하하는 내용의 초중등교육법 개정안이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하면서 일차 제동이 걸렸다. 이 개정안은 최상목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로 폐기돼 AI 교과서의 교과서 지위는 유지됐다.
이재명 정부에서는 혼선이 새로운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하정우 대통령실 인공지능미래기획 수석비서관이 교과서 지위를 비롯해 기존 AI 교과서 정책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면서 정부 안에서도 찬반 논란이 벌어지게 됐다. 이 대통령은 AI 교과서를 교육자료로 격하하겠다고 한 후보 시절 공약을 아직 거둬들이지 않았고, 교육부는 신임 장관이 임명되지 않은 상태에서 입장 재정리도 하지 못한 모습이다.
이러한 경우에 중심을 잡아야 할 국가교육위원회는 뒤로 빠져 있다. 국가교육위는 사회적 합의에 기반한 교육 비전과 중장기 교육 정책에 관한 업무를 맡은 대통령 직속 기관이다. 여기엔 정부와 국회, 교육계 등이 참여한다. 이 대통령이 즉각 국가교육위를 가동하고 이를 통해 AI 교과서 정책을 재정립하는 것을 고려할 만하다. AI 교육이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면 미래 지향적인 사회적 합의를 이뤄내고 그에 입각한 정책 조정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