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메프發' 졸속 규제의 그늘[생생확대경]

티메프 사태 이후 규제 대상이 된 이커머스
공정위 대규모유통법 개정안 이커머스 포함
쫓기듯한 법 개정, 기준따라 中企 진출 장벽될수도
23일 공청회 예정, 산업계 목소리 적극 들어야
주무부처 산업부도 적극 목소리 전달해야
  • 등록 2024-09-19 오전 5:50:00

    수정 2024-09-19 오전 5:50:00

[이데일리 김정유 기자] 최근 국내 이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의 표정은 복잡미묘하다.

티몬·위메프(티메프) 사태가 기업회생 개시 결정으로 일단락됐지만 이커머스에 대한 시장의 신뢰도는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다. 정산주기를 칼같이 지킨 이커머스 업체들이 대다수지만 판매자(셀러)들도 플랫폼에 대해 의심부터 하는 분위기다.

티메프 피해 판매자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8일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피해자 연합 검은 우산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티메프 피해 판매자 비상대책위원회)
이런 상황에서 규제의 칼날은 이커머스를 정조준하고 있다. 일부 이커머스의 일탈을 막기 위해 최소한의 규제장치를 둘 필요성이 생긴 건 사실이다. 하지만 현재 흐름을 보면 정부는 이커머스 전반의 구조를 뜯어고치려고 하는 듯하다.

대표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가 추진하는 대규모유통업법(유통법) 개정이다. 연매출 1000억원 이상 오프라인 유통사들을 대상으로 했던 유통법에 이커머스를 포함하는 게 골자다. 공정위가 추진하는 유통법은 △연간 중개거래수익(매출) 100억원 이상 또는 거래액 1000억원 이상 △중개거래수익 1000억원 이상 또는 거래액 1조원 이상 등 2개안을 제시했다. 정산기일도 구매일로부터 10~20일 내 또는 월 판매마감일로부터 30일 이내 등 2개 안이 거론된다. 판매대금도 100%를 별도 관리하는 안과 50%를 관리하는 방안이 준비된 상황이다.

이커머스 업계에선 한숨부터 나온다. 기존 오프라인 업체 중심으로 만들어진 유통법을 업태가 다른 이커머스에 숫자와 규모만 바꿔 적용한다는 건 이미 시작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다. 법 개정도 너무 숨가쁘게 진행하고 있다. 하나의 산업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데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처리하는 게 불안하다는 목소리도 들린다.

공정거래법을 전문으로 하는 한 법조계 관계자는 “정부는 티메프 사태 초기에는 기업 채무불이행에 가까워 개입하기 어렵다고 했었다”며 “여론이 악화하자 며칠도 되지 않아 유통법 개정에 나선 것”이라고 했다. 이어 “규제를 신설하는 건 쉽지만 없애거나 바꾸는 데에는 매우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며 “지금처럼 급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나 싶다”고 지적했다.

이커머스 업계에서는 유통법 개정 자체가 산업 성장에 큰 제동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소 플랫폼들이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문을 닫을 수도 있어서다. 중소 업체들은 자금 상황이 대기업보다 녹록치 않아 정산기일 단축이나 대금의 별도예치를 강제하면 사실상 사업을 운영하기 힘들어진다.

공정위는 23일 유통법 개정안을 앞두고 업계 목소리를 수렴하기 위해 공청회를 연다. 당연한 수순이지만 업계는 여전히 불안하다는 입장이다. 경쟁당국이 최근 개정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사실상 일방향적인 소통만을 보였다는 후문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들어야 한다. 이커머스도 글로벌 사업이다. 많은 국내 중소기업 제품들을 해외로 수출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 특정 기업의 일탈 때문에 산업 전체의 발전을 역행시키는 정책 추진은 이제 지양해야 한다. 매우 세밀한 ‘핀셋 규제’나 하위 법령에서 규제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융통성이 필요하다.

유통산업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도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논리로 뒤에 숨어서는 안된다. 산업계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규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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