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재 을지대 대학원 안전보건시스템학과 교수]얼마 전 한 기업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안전교육을 할 때였다. 1시간이 지나자 직원 중 한 명이 잠시 쉬었다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만족도 평가를 잘 받으려면 ‘1시간 교육에 10분 휴식은 필수’라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하마터면 휴식시간을 지키지 않은 만족도 낮은 강사가 될 뻔했다. 필자에게 1시간 근무 후 10분의 쉼은 학창시절이나 직장생활을 하면서 집중력을 관리하고 효율성을 높이는 루틴으로 최적화해 있다.
일과 휴식의 균형은 더운 여름철에 그 중요성이 배가된다. 지난 6월부터 의무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던 산업안전보건기준 개정안 ‘폭염 작업 의무 휴식’ 조항을 철회하면서 여름철 폭염 예방 활동에 혼란이 일고 있다. ‘33도 이상 폭염 때 2시간 일하고 20분 휴식’을 해야 한다는 조항은 고용노동부가 그동안 권고성 지침으로 운용하던 것을 의무화한 것으로 지난 3월 입법예고까지 마친 상태였다. 그런데 규제개혁위원회가 “근로자 건강 장해 예방에 실효성이 있는지 명확하지 않고 중소사업장에 부담이 되는 획일적인 규제”라며 철회를 권고함에 따라 사실상 시행이 무산됐다.
여름철 온열질환은 장시간 고온에 노출된 신체가 체온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우리 몸이 갑자기 상승한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 혈액의 양을 늘려 열기를 발산하고 땀을 흘려 체온을 낮추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다량의 수분과 염분이 배출돼 발생하는 건강 장해를 말한다. 제때 대처하지 못하면 생명이 위태로울 수도 있다. 질병관리청 통계에 따르면 폭염 일수와 온열질환자 수는 매년 증가 추세를 보이고 있다. 폭염 일수의 경우 2022년엔 10일, 2023년 19일, 2024년 33일로 나타났다. 온열질환자도 2022년 1564명, 2023년 2818명, 2024년 3704명으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어 예방기준 마련이 시급한 실정이다.
폭염은 생산성을 떨어뜨리고 경제에도 심각한 타격을 줄 뿐 아니라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심각하게 위협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어렵고 힘든 분야에서 일하는 근로자에게 더 위협적인 두 얼굴의 모습을 보인다. 실제로 지난 2023년 8월 대형 할인매장에서 카트를 정리하던 30대 근로자가 35도가 넘는 폭염 속에서 일하다 쓰러져 사망했다. 또 지난해 8월엔 학교에서 에어컨을 설치하던 20대 청년기사가 열사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119 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해 측정한 체온은 40도가 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에게 폭염 예방기준이 제대로 지켜졌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이들에게 숨을 고를 수 있는 쉼은 없었다.
‘기후재난’으로 불리는 폭염은 오늘날 세계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각 나라마다 대응하는 방식은 다르지만 안전보건을 사회적 규제로 인식하고 사람 중심의 법제화를 추진하고 있다. 카타르는 32.1도, 독일은 35도가 넘으면 하던 일을 중단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지난 6월부터 고온에 노출되는 근로자 보호 의무를 사업주에게 부여하고 있다. 미국도 지난해 8월 기온이 32도 이상일 때 최소 2시간마다 15분씩 의무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기준안을 발표하고 의무화를 추진하고 있다.
‘폭염 작업 의무 휴식’ 은 규개위 권고로 시행하지 못했지만 대기업 등 현장에서 폭염은 ‘여름철 안전관리 1호’ 대상이다. 고용노동부는 본격적인 무더위에 앞서 폭염 작업 현장 감독을 실시하면서 주기적인 휴식 부여 등 기본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업장에서 재해가 발생하면 엄정 조치한다고 경고했다. 지난달 13일엔 중대재해처벌법 시행 후 처음으로 폭염에 의한 열사병이 중대재해로 인정돼 원청의 사업주가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현장에서 실질적으로 작동되는 것이라면 구체적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오히려 합리적이다. 폭염 예방을 위해 누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어려움을 호소하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지원 방안을 마련한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폭우나 폭염 같은 자연재난을 막을 순 없지만 이런 재난에 대비해서 미리 준비한다면 인명이나 재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기상청 예보에 따르면 올여름은 지난해보다 더 더울 것이라고 한다. 폭염 때 물을 마시고 그늘에서 잠깐만 쉬어도 근로자의 생명을 지킬 수 있다. 더 이상 일터에서 쉼이 없어 숨지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리지 않도록 촘촘한 폭염 대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