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하고 행복한 퀴어, 색자[문화대상 이 작품]

제11회 이데일리 문화대상 연극 심사위원 리뷰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구자혜 연출, 트랜스젠더 배우 색자의 모노드라마
  • 등록 2025-03-18 오전 6:00:00

    수정 2025-03-18 오전 11:30:37

[백로라 연극평론가(숭실대 교수)] 60대 후반의 트랜스젠더 여성이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직접 들려주는 연극이 무대에 올랐다. 연출가 구자혜가 배우 색자와 함께 준비한 모노드라마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3월7~13일,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가 바로 그것. 남자의 몸으로 태어나 게이로 살다가 여성의 몸으로 바꾸어 살아온 트랜스젠더. 16세에 가출해 거리를 떠돌다 1980년대부터 트랜스젠더 바에서 활동한 1세대 트랜스젠더 퍼포머. 왠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가 뺨을 맞아도 수십 번은 맞았을 ‘퀴어 수난사’가 될 것 같아 공연을 보기 전부터 마음이 무거웠다.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공연 사진. (사진=혜정)
그러나 예상 외로 이 연극은 관객의 마음을 어둡게 하거나 아프게 하지 않는다. 파트너를 찾아 종로의 극장을 찾던 일, 호텔에 숙박하는 외국인을 상대로 성매매를 하던 일, 풍기문란죄로 경찰에 체포돼 ‘닭장차’에 갇혀서 죽을 뻔한 일, 여관방에서 불법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던 일 등 트랜스젠더로 살아온 색자의 삶은 감당하기 어려운 질곡의 여정이었다. 그러나 묘하게도 그것은 ‘차별’이나 ‘억압’을 환기하지 않는다. 관객에게 고통을 전하거나 연민의 감정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유쾌하고 당당하다.

이것은 색자가 과거를 이야기하면서 늘 ‘괜찮았다’고 말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일례로 색자는 수술받을 때의 공포와 고통에 관해 이야기한 뒤 선배 언니가 차려준 따뜻한 밥상에 대한 기억을 전하며 울먹인다. 힘들었던 삶 속에서도 감동적이고 행복했던 순간이 있었음을 말하려는 것일 테다. 그렇게 색자는 자신의 삶을 즐겁고 행복하게 기억한다.

‘행복의 정동(情動)’에 대해 다룬 사라 아메드에 따르면 “퀴어는 (행복한 퀴어라 할지라도) 퀴어를 불행하다고 읽는 세상에 의해 불행해질 수 있다”고 한다. 색자의 뺨을 때리지 않는 세상, 그것은 색자를 불행하다고 여기지 않는 세상일 것이다. 이를 위해 색자는 고통과 불행의 감정이 아닌, 즐거움과 행복감을 전한다. “너는 아주 고귀해서 네가 없으면 세상이 없을 수도 있어”라고 말하거나, “주민번호 뒷자리를 바꾸지 않아도 삶이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색자는 고귀하고 행복해 보인다. 행복한 퀴어, 색자를 바라보는 관객도 행복하다.

남성적인 의상을 입고 등장했던 색자는 공연 중에 몇 차례 옷을 갈아입기 위해 퇴장한다. 갑자기 무대가 텅 비고 극장은 어색한 침묵 속에 잠긴다. 꽤 긴 시간이 흐르고 색자가 화려한 의상을 입고 무대에 등장한다. 이것은 남성도 여성도 아닌, 혹은 그 모두인 존재가 매번 세상이라는 무대에 다시 태어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대사를 잊어서 구자혜가 대사를 불러주는 장면도 거칠지만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자혜와 색자가 나란히 앉아 수다를 떠는 장면 연출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모든 사람이 우리를 자기네와 동등하게 생각해줬으면 하는’ 색자의 바람이 연상돼서다. 단, 극장 전체를 트랜스젠더 바나 캬바레처럼 바꾸고 뭐라도 마시면서 자유롭게 공연을 즐기는 형식이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봤다.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공연 사진. (사진=혜정)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공연 사진. (사진=혜정)
연극 “뺨을 맞지 않고 사는 게 삶의 전부가 될 순 없더라” 공연 사진. (사진=혜정)
백로라 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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