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1만 4295개 투표소에서 치러진 제 21대 대통령 선거 본투표는 투개표 과정에서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잇따랐던 20대 대선에 비해 비교적 순탄하게 끝난 것으로 보인다. 잡음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투표용지가 밖으로 반출되고, 투표 사무원이 중복 투표하는 등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던 지난달 29~30일의 사전투표에 비하면 큰 탈이 없었다고 할 만하다. 하지만 부정 의혹 시비를 부를 만한 사건, 사고가 없었다고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책임을 다했다고는 보기 어렵다.
각 정당의 명운이 걸린 대선 레이스에서 투명하고도 공정한 선거 관리의 중요성은 몇 번을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선 과정에서 생긴 시비와 앙금이 선거 후에도 계속된다면 새출발을 하는 정권은 정당성에 흠집이 날 수밖에 없다. 야당과 민심의 공세로 대통령의 리더십은 흔들리고 국정추진 동력도 차질이 불가피하다. 헌법이 선관위를 헌법 기관으로 명시하고 설립 근거와 권한 등을 부여해 독립성을 보장한 것은 그만큼 선관위의 역할과 결정 등이 국정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막중하기 때문이다.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이 사전 투표 기간 발생한 부실 관리에 대해 사과하고 책임 소재 규명과 관련자에 대한 법적 책임 추궁을 다짐했지만 선관위가 해야 할 일이 이게 다는 아니다. 부실 관리 문제가 재발하지 않도록 치밀하고도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신뢰를 제고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선거 관리가 엉망으로 이뤄지면 사후에 아무리 사과하고 처벌에 나선다고 해도 부정 선거 시비를 막을 수 없다. 자녀 특혜 채용과 중립성 훼손 논란 등으로 최근 2~3년간 대국민 이미지에 큰 상처를 입은 선관위로서는 이런 작업을 한시라도 빨리 서둘러야 한다.
투개표 기간 발생한 사건, 사고의 상당수는 유권자들의 일탈이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 배경에는 선관위에 대한 국민 불신도 자리잡고 있다. 차제에 선관위는 선거제도 전반에 대한 대수술을 과감히 추진해야 한다. 그 첫 시험대는 내년 전국적으로 실시되는 지방 선거가 될 가능성이 큰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국민 신뢰를 되찾고 위상을 높일 개선 작업에 속도를 내 선거 잡음을 원천 차단할 제도가 마련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