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국민참여재판’은 도입 18년을 맞았지만 활성화되지 못하고 법관들이 기피하는 제도로 전락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제도 확대를 공약할 정도로 난맥상이 심각한 상황이다. 국민참여재판의 문제점과 개선 과제를 짚어봤다. [편집자 주]
 | (사진=챗GPT 이미지 합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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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송승현 기자] 뺑소니 혐의로 기소된 80대 A씨가 국민참여재판(참여재판)을 신청했지만 방어권 행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례가 나왔다. 재판부가 8개월간 재판을 지연시킨 탓에 당시 인지기능 저하 증상을 보였던 A씨의 기억력 감퇴가 악화했기 때문이다. 법조계에서는 참여재판을 대하는 법관들의 부정적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19일 이데일리 취재에 따르면 올해 초 수도권에 위치한 한 모 지방법원 형사합의부는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도주치상) 등 혐의를 받는 A씨에게 참여재판을 거쳐 벌금형을 선고했다. 앞서 A씨는 지난 2023년 도로 폭이 좁은 편도 1차로에서 차량을 들이받은 뒤 사고 조치를 하지 않고 달아난 혐의로 기소됐다. A씨의 사건을 맡은 국선전담변호사는 참여재판을 신청했다. 고령의 나이에 벌금형 자체가 부담스러운 데다 실제 뺑소니인지 일반 시민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가 경도인식장애 등 정신이상 의심이 있다”며 배제 결정을 했다. 참여재판 신청으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부터 노골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힌 탓에 사건이 배당된 지 6개월 만에 내린 배제 결정이다. 이에 A씨 변호사는 고등법원에 항고해 ‘1심의 참여재판 배제 결정은 부당하다’는 결론을 받았다. 이 결론에도 1심 재판부는 8개월간 결정을 미뤘을 뿐 아니라 신청을 철회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단 취지의 발언도 거듭했다. 우여곡절 끝에 A씨는 1년4개월 만에 참여재판장에 서게 됐지만 그 사이 기억력 감퇴 증상이 악화한 탓에 애초 준비했던 소송 전략도 펴지 못했다. 결국 배심원 만장일치로 벌금형 평결이 났다.
 | (그래픽=김일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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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에서는 참여재판을 피하려는 법관들의 부정적 인식이 반영된 결과라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 지난해 참여재판 신청 719건 중 실제 참여재판이 이뤄진 건 91건에 그쳤다. 이는 참여재판 도입 2년차로 제도가 자리잡지 못한 2009년(95건)보다도 적은 수치다. 참여재판 제도가 유명무실해진 데에는 재판부의 업무 부담이 결정적인 이유로 꼽힌다. 일반 형사재판은 보통 수차례 공판을 거쳐 선고에 이르는 반면 국민이 배심원으로 참여하는 참여재판은 통상 하루 만에 공판과 평결, 선고까지 마쳐야 한다. 배심원뿐만 아니라 판사조차도 사건기록을 꼼꼼히 검토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선고까지 하루에 이뤄지다 보니 판결문 작성도 부담이 된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의 참여재판 기피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로 16개월 동안 공판이 열리지 않은 것도 매우 이례적”이라며 “법정에서도 참여재판을 신청하면 철회를 유도하는 경우가 많은 만큼 제도 개선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참여재판 활성화를 위해 단기적으로 업무 가중치를 둬 사건 배당을 줄이고 장기적으로는 전담재판부 설치와 전문 국선전담변호사 제도 신설 등 목소리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