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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문제는 이 인사가 언제나 ‘내가 아는 사람’의 좁은 풀에 갇힌다는 점이다. 통상적으로 대통령과 그 주위에 있는 몇몇 참모가 인선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특정 직역과 네트워크에 속한 사람들이 대거 공직으로 진출한다. 전직 판·검사 그룹, 일부 언론계 출신, 특정 시민단체나 정치 계보, 연구회가 ‘핵심 인사 풀’로 재편되는 일은 흔하다. 이렇게 선발된 인재들은 다양성과 전문성을 잃은 채 정권의 논리에 맞춰 배치되고 그 결과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정책 혼선, 도덕성 논란, 무능력으로 인한 비용 지출과 혼란을 반복하면서 정권도 큰 정치적 부담을 져야 했다. 임기 초에는 ‘이해관계 없는 전문가 인사’를 약속하고 임기 말에는 ‘낙하산 인사’와 ‘보은 인사’ 논란에 휩싸여 신뢰를 잃는 악순환을 되풀이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가에는 이미 제도가 있다. 바로 국가인재 데이터베이스(DB)다. 국가인재 DB는 대통령 직속으로 강력한 권한을 갖고 설계한 것이 아니다. 인사혁신처에서 구축·관리·운영하며 정부가 정당과 관계없이 각계 전문가와 경험자들을 등록해 놓은 국가 차원의 인재 저장소다. 또한 국민이 직접 공직 후보를 추천할 수 있는 국민추천제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그 결과는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국가인재 DB는 대통령과 핵심 인사권자가 거의 들여다보지 않는 서류 창고가 됐고 국민추천제는 상징적 이벤트로 소모됐다. 국민이 추천해도 실제 임명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결국 ‘활용하지 않는 DB’에 ‘형식적 추천’으로 끝나면서 국민이 느끼는 불신은 오히려 커졌다.
첫째, 인사 기능의 전근대성이다. 인재 DB는 어디까지나 행정부 내부의 시스템인데도 인사 부서의 역할을 관습적인 서무 부서로 인식, 전문성을 활용하지 않는 정부 인식에 있다.
둘째, DB 자체의 역량 평가 체계가 미흡하다. 현재는 단순한 이력서 형태에 가깝고 정성적 평가나 국정과제와의 적합도 분석은 부족하다. 즉 ‘누가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검증했는가’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이를 해결하려면 핵심 역량 기반의 정량적 지표, 과거 공직 경험 평가, 정책 실패·성과 이력 추적 등을 포함한 고도화한 구조로 발전시켜야 한다.
셋째, 국민과 연결되는 구조가 없다. ‘국민이 직접 장관을 추천한다’는 방식은 매력적으로 들리지만 국가인재 DB와의 연동 없이 단발성 이벤트로 끝난다. 상시 추천제와 전문가 집단의 평가 시스템을 연동해 운용해야 한다. 추천된 인물이 자동으로 DB에 등록되도록 하고 이력과 전문성을 교차 검증하는 방식으로 일원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과정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라는 점이다. 대통령과 측근이 결국 결정을 내리더라도 그 결정을 국민이 존중할 수 있으려면 ‘내가 아는 사람’만 기용했다는 오해를 넘어야 한다. 국가가 준비해둔 인재 DB와 국민이 참여한 추천 절차는 바로 그 신뢰의 기초다. 개개인 모두가 훌륭한 인물이라 하더라도 국민은 대통령이 ‘내 사람’을 뽑았더라도 최소한 어떤 기준과 검증 절차를 거쳤는지 알고 싶어 한다. 그 과정을 설명할 근거와 시스템이 준비돼야만 인사가 정권마다 편향과 반복을 되풀이하는 악순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대통령이 최종 결정을 내리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대통령이 진심으로 능력 중심의 인사를 원한다면 인재를 ‘찾는 인사’가 아니라 미리 준비하고 적소에 배치하는 인사 시스템을 정착해야 한다. 국가인재 DB는 그 출발점이 될 수 있다. 늘 ‘인사가 만사다’라는 경구를 암송하듯 말하지만 이는 일을 하기 위한 시작일 뿐이다. 더욱이 ‘일과 사람’을 연결하면 성과 또한 예측 가능한 부분이 많다. 이것이 인사 성패의 잣대이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인사를 전문 영역이 아닌 인사권자의 상식과 경륜에 기대 인선해 나간다면 과거와 같은 우를 범할 수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여기에 국가인사기능 통합과 전문화는 미래 성장의 첩경이고 글로벌 시대의 인재 과학임을 재인식해야 한다.
시스템과 관행은 한 나라의 품격과 국가 경쟁력, 대통령의 인사권을 다 함께 진화시키는 길이다. 하긴 대통령이라도 신세 진 사람을 외면하기는 어려운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보은 낙하산 인사는 이제 다른 대안을 모색할 때다. 그것이 곧 대통령을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결국 기득권을 미래와 바꾸는 결단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정치의 용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