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고준혁 기자] 최근 메모리 반도체주의 주가 급락은 예상치 못한 속도로 메모리 현물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PC 수요가 예상보다 약하게 나타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메모리 고객사 중 하이퍼스케일 서버업체가 메모리 공급사와의 ‘밀당’에서 어느 정도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란 진단이 나온다.
김선우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최근 메모리 관련주의 급락이 메모리 현물가 하락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메모리는 공급사와 계약사가 대규모 물량을 언제부터 언제까지 주고받겠다는 계약에 기반한 고정가격과 당일 거래의 현물가격으로 나뉜다. 현물가격으로 거래되는 비중은 고정가격으로 거래되는 것보다 현저히 적지만, 가격 추이가 미치는 영향력은 크다. 현재는 현물가가 고정가를 뚫고 내려가는 이른바 ‘데드크로스’의 발생이 나타나고 있는 상황으로, 메모리 관련주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다.
김 연구원은 메모리 현물가 하락을 표면적인 요인과 근본적인 요인으로 나누었다. 우선 기본요인으로는 PC 수요 약화 속 현물가 하방 압력이 가중되는 점을 지목했다.
그는 “코로나19 이후 급반등했던 PC 수요는 계절성을 기반으로 회복되고 있으나 탄력은 둔화 중”이라며 “특히 중저가 중심 수요 약화가 눈에 띄며 이에 OEM 및 채널 모두 재고 확충을 부담스러워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이데이터(Adate) 등 모듈사들은 디램 업체에 추가적인 현물가 하락을 전망하며 공급가 하락을 주문하고 있는 상황에다, 공급사들은 최근 서버 디램 불량 사고와 관련한 물량을 PC용으로 제작업 후 판매하고 있는 점도 현물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며 “실 디램 수요 내 현물 시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극미함에도 불구, PC 고정가와 기타 응용처(서버 및 모바일)의 선도적 영향력을 감안 시 향후 현물가 관련된 소음은 지속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김 연구원이 주목한 메모리 업황 둔화의 보다 큰 요인은 고객사인 서버 업체들의 가격 하락 압박이 공급사들에 유효했다는 점이다.
주요 메모리 업체는 손에 꼽힐 정도로, 얼핏 가격 협상력에서 시장 우위를 점할 것 같지만, 서버 업체들의 전략이 이를 무너뜨리고 있다. 서버 업체들은 공급 부족 국면에서 의도적인 이중·삼중 주문(더블부킹)을 통해 수요 분배를 특정시기에 집중시킨다. 이러한 상황에서 장비 주문 리드타임이 증가하는 등 생산 준비의 장기화가 나타나는 것까지 겹쳐 공급사들은 자본적지출(CAPEX)을 상향 조정하게 된다. 이는 점유율 경쟁에서 도태될 수 없는 경쟁사를 자극시키고 결국 공급 증가로 연결된다.
김 연구원은 “현재 공급사들은 수요 불확실성을 눈앞에 두고도 공급 조절을 통한 협상력 회복이란 전략적 선택을 취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며 “차선을 쫓다가 최악에 봉착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착시일지언정 당장의 완제품 재고는 부족한 상황이며, 생산 속도 조절을 실시했다가 경쟁사의 점유율 전략이 발동되는 상황을 책임지고 싶은 의사결정권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