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준영(57·사법연수원 20기) 서울회생법원장은 30일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에서 회생법원의 역할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그는 지난 1997년 외환위기 당시 우리나라 첫 개인파산 선고를 하며 실패를 딛고 일어설 수 있는 기회를 연 장본인이자 도산제도 발전을 위해 헌신한 도산법 1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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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다시 일어서겠다는 열의를 가진 채무자와 기업을 응원하고 기회를 주는 것이 법원의 역할”이라며 “이들이 경제활동을 못하면 복지예산이 투입될 수밖에 없지만 사회적 자립을 도와 시장에 복귀시키면 채권자는 물론 국가 전체 경제에 득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업 회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골든타임(생사를 결정지을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재정위기를 해결할 수 없음을 판단한 즉시 채무조정 내지 구조조정에 돌입해야 피해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는 “회생신청을 두려워해 골든타임을 놓치고 운영자금이 고갈될 때까지 경영을 하다가 상거래채무까지 변제 못하는 상황에서야 회생신청을 하면 기업가치가 훼손돼 회생가능성은 낮아지고 채권자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며 “기업 임원이 두려워 해야 할 것은 ‘회생신청 그 자체’가 아니라 채권자들에게 줄 ‘막대한 피해’”라고 지적했다.
대규모 기업일수록 빠른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상거래채권을 정상 변제하면서 회생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이다. 재정위기 상황을 주요 채권자들에게 솔직하게 알리고 회생 방안을 공감하고 부채 규모를 합리적으로 조정해 나가야만 회사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정 법원장은 “회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채무자와 채권자 간의 협력”이라며 “당장 가슴이 쓰려도 구조조정의 성공과 실패의 결정권을 쥔 채권자들이 청산보다 계속기업가치를 고려해 회사를 살려 변제받는 것이 경제적으로 합리적인 선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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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생신청은 지급정지 후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지급정지 우려가 있을 경우에 신청해 정상영업을 하면서 채무조정 및 구조조정을 통해 재무건전성을 회복하는 절차다. 홈플러스와 같은 재정상태에서 회생신청하는 것이 오히려 ‘회생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홈플러스 사태의 조기 종식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정상영업 중인 기업이 회생신청한 경우 회생신청 전과 동일하게 정상영업이 가능하도록 조치를 취해야 기업가치를 보전할 수 있어 회생가능성도 높아진다. 그 방법은 즉시 회생절차를 개시하고 동시에 법원의 허가 없이도 정상영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영업계속 포괄허가’를 내리는 것이다. 다만 신청 당일 회생개시결정 및 영업계속을 위한 포괄허가를 했다고 법원이 기업의 회생안을 승인한 것은 전혀 아니다. 향후 채권자들이 채무자가 제시하는 회생안을 받아들여야 회생에 성공하게 된다.
-신동아, 대저건설, 삼부토건 등 중견 건설사 다수가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리먼브러더스 사태 때와 같이 건설업계 줄도산 우려도 나오고 있는데.
-올해 1~3월 기준 개인회생 신청 건수가 3만2000건으로 전년 대비 약 33%가량 증가했는데.
△불경기의 장기화, 물가 상승 등으로 개인회생 사건 접수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채무자들이 하루빨리 빚의 수렁에서 벗어나 정상적 경제활동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데 이를 위해서는 결정 시까지의 시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개별 회생위원 및 파산관재인들의 업무 부담을 가중하지 않으면서 업무 처리 속도 편차를 줄이고 사건 적체 현상을 해소하고자 회생위원 및 파산관재인 제도의 개선방안을 다각도로 연구 중이다.
-서울회생법원에서 올해 국제공조전담법관을 다시 시행한다. 국제도산 분야에서 회생법원이 수행할 역할과 기대하는 효과는.
△국제도산 사건은 타 국가의 도산절차에 대한 승인 및 지원 사건으로 타국에서 진행중인 도산사건 재판부와 직접 소통하고 협력을 하는 국제공조가 필요하다. 서울회생법원은 우리나라에 접수되는 국제도산사건에 대한 전속관할을 가진다. 국제 공조업무뿐 아니라 도산제도의 세계적 동향을 파악하고 각종 도산국제회의 관련 업무도 담당함으로써 우리 도산제도의 국제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정준영 서울회생법원장은 △1967년 서울 출생 △서울대 사법학과 △서울대 법과대학원 △제30회 사법시험(사법연수원 20기) △서울지방법원 북부지원 판사 △국회 파견법관 △법원행정처 송무심의관 △광주지방법원 장흥지원장 △대법원 재판연구관 △인천지방법원 부천지원장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서울회생법원 수석부장판사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현)제5대 서울회생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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