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임죄 전면 폐지는 교각살우…합리적 개선이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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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형벌 합리화 세미나서 배임죄 놓고 열띤 토론
"한국 배임죄 기소, 일본의 수십배…매년 증가"
"1인 회사 배임죄 재검토·특경법 기준 개선 필요"
"형사 제재 완화와 민사 구제 강화 병행해야"
  • 등록 2025-09-23 오전 5:15:00

    수정 2025-09-23 오전 5:15:00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배임죄 전면 폐지는 교각살우(矯角殺牛·소의 뿔을 바로잡으려다가 소를 죽인다)다.”

지난 22일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경제활동 보호와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경제형벌 제도의 혁신과 과제’ 세미나 2세션에서 법조계 전문가들은 최근 제기되고 있는 배임죄 폐지론에 대해 일제히 반대 입장을 표명하며 치열한 토론을 벌였다.

이날 김영종(사법연수원 23기) 변호사(코리그룹 부사장)가 ‘노란봉투법 도입에 따른 기업의 형사책임에 대한 입법적 균형 방안-업무상배임을 중심으로’ 주제로 발제에 나서 배임죄 폐지 논의에 반대 의견을 밝힌 데 이어 토론자들도 전면 폐지보다는 구체적 개선방안을 제시하며 의견을 교환했다.

김영종(가운데) 변호사가 지난 22일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경제활동 보호와 법질서 확립을 위한 경제형벌 제도의 혁신과 과제’ 세미나에서 ‘노란봉투법 도입에 따른 기업의 형사책임에 대한 입법적 균형방안-업무상배임을 중심으로’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유철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 이천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원장, 김 변호사,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노신정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 (사진=성주원 기자)
“배임죄 기소, 한국이 일본의 수십배”

토론에 나선 정유철(31기)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는 한·일 배임죄 기소 통계를 직접 비교했다. 그는 “일본 법무성 통계에 의하면 2021년 배임죄로 33건, 2022년 48건, 2023년 51건이 기소됐다”며 “반면 한국은 배임·횡령을 합쳐 2021년 1900건, 2022년 2016건, 2023년 2058건으로 수십배 이상 많은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증가 추세다. 정 변호사는 “업무상 배임·횡령 통계를 보면 2021년 약 3500건, 2022년 약 4600건, 2023년 5800건으로 매년 1000건 이상씩 증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러한 과도한 배임죄 적용의 원인으로 △국민들이 민사구제 수단의 한계로 인해 형사고소에 의존 △수사기관의 경제 현실에 대한 이해 부족 △사후 확증편향(결과 책임론) △법원의 전문성과 심리시간 부족 등을 제시했다.

“배임죄 전면 폐지는 사회 혼란 초래”

토론자들은 배임죄 폐지론에 대해 일치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이승준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기업 환경의 변화와 기업 경영의 어려움을 이유로 배임죄 규정을 폐지하는 것은 교각살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며 “기업 범죄의 처벌 위험 때문에 배임죄를 폐지한 국가는 찾아보기 힘들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국가 형벌권의 발동은 가장 강력한 사회 통제 수단이기 때문에 범죄화를 위해서는 여러 프로세스와 국민 컨센서스가 필요하다”며 “반대로 비범죄화를 하기 위해서도 이러한 프로세스가 필요하다. 기업 경영 활동이 위축된다는 일부 부작용만을 이유로 비범죄화할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노신정(변호사시험 6회) 법무법인 대륙아주 변호사도 “앞서 토론자들과 마찬가지로 업무상배임죄의 전면 폐지는 사회 신뢰를 해치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지양돼야 한다”며 “다만 그 적용에 있어서 경영판단의 원칙이나 일부 요건의 명확화는 반드시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1인 회사 배임죄 재검토해야”

노신정 변호사는 특히 1인 회사의 업무상배임죄 적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그는 “1970년대에는 대법원이 1인 주주 겸 대표이사가 회사에 손해를 가한 경우 ‘회사의 손해가 바로 1인 주주의 손해’라고 봐서 배임죄를 인정하지 않았다”며 “그런데 1983년부터 법인격의 독립성을 이유로 배임죄 성립을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노 변호사는 “1인 회사에서는 다른 주주나 채권자의 이익이 침해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는 배임죄 성립 여지가 차단되는 것이 타당하다”며 “개인이 개인사업을 할 때는 문제없던 행위가 1인 회사를 설립하면 배임죄 처벌을 받는다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라고 반문했다.

“특경법 기준 35년간 동결은 입법부작위”

정유철 변호사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특경법)의 시대착오적 기준을 강력히 비판했다. 그는 “특경법이 1983년 제정될 때부터 50억원 기준이었는데, 1990년 개정 때도 50억원 기준을 유지해 35년간 그대로 방치되고 있다”며 “이는 입법부의 부작위에 의한 문제”라고 지적했다.

정 변호사는 “1990년에 50억원이면 여의도 아파트 25채 정도였는데,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현재 기준은 엄청나게 낮아진 것”이라며 “특경법의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민사구제 강화 없이는 형사 편중 지속”

이승준 교수는 형사 제재 완화와 민사 구제 강화가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나라 현실을 보면 주주대표소송, 집단소송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일반 국민과 기업의 주주·채권자들이 형사고발로 실익을 얻으려 하고, 수사기관도 여기에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과도한 형사화가 이뤄졌다”고 분석했다.

정유철 변호사도 “국민들이 형사고소에 의존하는 근본 원인이 민사적 구제 수단이 시간이 오래 걸리고 현실적 이익 확보가 어렵기 때문”이라며 “기업들도 디스커버리 제도나 집단소송 제도 등 민사소송 제도 보완에 열린 마음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수사기관 입장에선 사회 여론 압박도 고려사항”

대검찰청 과학수사부장(검사장급)을 지낸 허정(31기)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은 수사 실무의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그는 “이재용 삼성 회장 사건을 예로 들면, 당시 기소 시점에서 수사기관이 기소를 안 할 수 있었겠냐”며 “엄청난 사회적 여론과 피해자들의 주장이 있는 상황에서 검찰의 불기소 결정만으로는 사회적 논란이 잠재워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허 연구위원은 “배임죄가 원래 직원의 배임 행위 규율을 위한 것이었는데, 경영자만 포커스를 맞춰서는 안 된다”며 “예를 들어, 금융기관 대표자 입장에서 직원들의 부정한 대출을 통제하기 위해서도 배임죄는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양형기준법 제정은 신중해야”

김영종 변호사의 발제 내용 중 ‘정당한 양형을 선고받을 권리의 헌법상 기본권 승격’ 주장에 대해서는 토론자들의 의견이 갈렸다. 정유철 변호사는 “미국에서도 양형기준(Sentencing Guideline)을 의무적으로 따르도록 했다가 법관의 자유재량을 침해한다며 위헌 판결이 났다”며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종 변호사는 이에 대해 “법관의 재량을 침해하자는 것이 아니라 헌법적 수준에서 통제하자는 것”이라며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정도의 제재가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자율규제와 공적규제의 조화 필요”

2세션 좌장을 맡은 이천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부원장은 “현재 우리나라는 외부 규제 중심인데 내부 통제, 즉 자율 규제에 대한 논의가 부족하다”며 “컴플라이언스 프로그램을 충실히 운영한 기업에 대해서는 형벌을 감면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적절한 조화가 이뤄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정웅석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원장은 세미나 폐회사에서 “민주당 태스크포스(TF) 의견이 나오면 상사법학회, 상사판례학회, 기업법학회, 경제법학회와 공동으로 후속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며 “꾸준히 정부를 위한 건의와 바람직한 제안을 하겠다”고 전했다.

지난 22일 오후 여의도 한국경제인협회에서 열린 ‘경제형벌 제도의 혁신과 과제’ 세미나 주요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성주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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