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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 규모가 커졌기에 금리 상승의 충격은 과거보다 훨씬 빠르고 넓게 퍼지게 된다. 이자비용이 늘어나면 같은 세수로 쓸 수 있는 재정 여력은 줄어든다. 경기 부양, 복지, 국방, 산업정책에 투입할 수 있는 자원이 줄어들거나 이를 유지하기 위해 더 많은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금리 상승이 다시 부채 부담을 키우고 커진 부채가 다시 금리 상승 압력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생길 수 있다.
이 때문에 선진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오랫동안 낮은 금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시행된 양적 완화는 단순히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정책만은 아니었다. 중앙은행이 국채를 사들이면서 장기금리를 낮추고 정부와 민간이 감당해야 할 금융비용을 낮추는 역할도 했다. 저금리는 부채가 많은 경제가 시간을 벌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완충장치였다.
주식시장은 ‘저금리’와 ‘풍부한 유동성’이라는 가장 우호적인 환경을 등에 업고 유례없는 강세를 나타낼 수 있었다. 금리가 낮아지면 기업들의 조달 비용이 감소해 수익성이 개선되고 미래 현금 흐름의 현재 가치가 높아지면서 밸류에이션이 크게 확장된다. 또한 대안투자처인 채권의 매력도가 떨어짐에 따라 갈 곳 없는 자금들이 주식시장으로 대거 유입됐고 이는 자산 가격의 구조적 상승을 견인하는 핵심 동력으로 작용했다. 즉, 지금까지의 증시 호황은 정부 부채 확대를 저금리로 방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달콤한 과실이었던 셈이다.
최근 일부에서 인플레이션을 용인해 부채의 실질 상환 부담을 낮추자는 주장이 나오는 것도 같은 논리다. 다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높은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관리 가능한 인플레이션’이다. 명목 성장률은 실질 성장률과 물가 상승률의 합이다. 물가 상승은 명목 성장률을 끌어올려 부채 부담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인플레이션 기대가 통제되지 않으면 시장금리도 함께 급등한다. 이런 조합이 현실화하면 명목 성장률 상승의 효과보다 이자율 상승 비용이 더 커질 수 있다. 따라서 핵심은 물가 상승을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인플레이션 기대심리를 적절히 조정하면서 금리의 무질서한 급등을 막는 데 있다.
이번 글로벌 국채금리 상승은 이런 균형이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중동전쟁 장기화로 유가가 상승하면서 인플레이션 재점화 우려가 커졌고 동시에 각국 정부의 재정지출이 통제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이 더해졌다. 영국은 대표적인 사례다. 장기 국채금리가 급등한 배경에는 에너지 가격 충격뿐 아니라 정치 불확실성과 재정 건전성에 대한 의구심이 함께 작용했다.
정부의 재정지출 그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입장은 아니다. 경기 침체기나 위기 상황에서는 정부가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처럼 국채 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의 절제 없는 지출은 전혀 다른 부작용을 낳는다. 금리가 치솟는다는 것은 한정된 경제적 자원에 대해 정부와 민간이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결과적으로 민간의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Crowding-out Effect)가 강력하게 발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다. 정부가 자금 조달을 위해 국채 발행을 남발하면 시중 금리가 올라가고 이는 민간 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기 어렵게 만들어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킨다. 따라서 국채 금리가 상승할 때는 재정 지출을 확대하기보다는 건전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자산시장과 경제 전반을 지키는 훨씬 올바른 정책 기조다.
그럼에도 금리 상승세가 시장 기능을 훼손할 정도로 이어진다면 중앙은행의 개입은 불가피해질 수밖에 없다. 2022년 가을 영국 국채금리가 급등했을 때 영란은행은 기준금리를 올리고 양적 긴축을 추진하던 와중에도 장기 국채를 일시적으로 매입하는 ‘미니 양적 완화’를 실시했다. 물가와 싸워야 하는 중앙은행이 동시에 금융안정을 위해 시장에 개입해야 했던 것이다.
지금도 비슷한 시험대가 열리고 있다. 취임을 앞둔 케빈 워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마주할 가장 무거운 과제는 인플레이션을 억제하면서도 장기금리의 무질서한 상승을 막는 일이다. 금리가 다시 자산시장의 중력으로 돌아온 지금 주식시장의 방향은 기업 이익만이 아니라 정부 부채와 중앙은행의 대응 능력에 의해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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