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조기 대선을 앞두고 분주해진 사람이 있다. 바로 발달장애인 참정권을 둘러싼 법적 다툼을 이어오고 있는 이승헌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장추련) 사무국장이다. 장애인의 날인 20일 서울 종로구의 사무실에서 만난 이 국장은 누구나 공평한 환경에서 한 표를 행사할 권리를 발달장애인은 온전히 보장받지 못한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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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시각 또는 신체의 장애로 인해 자신이 기표할 수 없는 선거인은 그 가족이나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를 보조하게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시각·신체장애로 볼 수 있는지, 투표 보조를 어떤 기준으로 허용할지가 불명확해 도움을 받아야 할 장애인이 한씨처럼 적절한 지원을 못 받는 일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 8년간 장애인들의 차별 사례를 상담해 온 이 사무국장은 “발달장애인은 낯선 환경이 유독 어렵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의 정서 지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발달장애인은 문해력 뿐 아니라 소근육의 발달 정도에 따라 누군가에겐 쉬운 기표행위가 어려울 수 있다”며 “그래서 당사자들이 투표 보조를 요구해왔지만, 선관위는 법 개정의 필요성을 이유로 시정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이 국장은 “문자로 인쇄된 투표용지는 발달장애인에게 어려울 수 있어서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우면 시각장애인에게 점자로 된 투표용구를 주는 것처럼 이해를 도울 보조용구라도 따로 제공하라는 것”이라고 소송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이미 대만 같은 다른 나라도 그림 투표용지를 제공하고 있다”며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기본권을 행사할 기회를 국가가 제한하면 안된다”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0월 발표한 ‘장애인 선거 참여 환경 모니터링’ 보고서에 따르면, 대만은 후보자의 사진과 각 정당의 로고·상징 이미지가 삽입된 그림투표용지를 제공해 장애인의 선거 참여를 돕고 있다. 인권위는 이 보고서를 통해 “발달장애인들의 선고 및 투표에서 참정권 보장을 위한 제도개선 노력이 필요하다”며 “공직선거법 제157조 제6항과 제163조 제1항 개정을 통해 투표보조 제도를 활용할 수 있는 장애유형의 확대와 투표보조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명문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선관위는 그림 투표 보조용구의 실효성을 점검하는 일이 선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선관위 선거관리과 관계자는 “투표용지는 규격이 법으로 정해져 있고, 한 후보자당 1.5㎝가 배당되는데 후보자가 많아질수록 세로 길이가 짧아진다”며 “이 경우 발달장애인이 사진을 보고 후보자를 식별할 수 있을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다”고 설명했다. 투표 보조와 관련해선 “대리 투표의 가능성을 차단할 조치 없이 모든 발달 장애인을 대상으로 일괄 적용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같은 선관위의 답변에 이 국장은 현실적 어려움을 인정하면서도 눈앞의 과제를 하루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탄핵을 통해 헌법의 중요성과 민주주의 절차에 대해 많은 시민이 돌아보게 됐는데 장애인은 참정권을 행사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다”며 “한 사람의 국민으로서 목소리를 낼 기회가 부족하기 때문에 환경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한 표를 국가시스템에 반영하려는 국가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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