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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재해 원인을 규명하기도 전에 특정 업체가 법 위반을 한 것으로 단정 짓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산업안전에는 원청사, 하청사(사업주), 발주자, 제조자, 대여자, 노동자 등 여러 주체가 관련돼 있다. 누가 잘못했는지는 조사를 해봐야 알 수 있는데도 조사하기도 전에 원청사 책임으로 전제하고 ‘답정너’ 수사를 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권력 행사가 ‘법률’이 아닌 ‘국민정서법’에 따라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이는 의무주체의 권한과 역할에 맞는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안전원리와도 배치된다.
중대재해가 발생하기만 하면 잘못의 정도를 묻지 않고 엄한 제재를 당연시하는 건 책임원칙에 반하는 결과책임를 묻는 처사다. 죄를 저질렀어도 죄질과 책임에 상응하는 제재를 하는 것이 엄연한 헌법원칙인데도 산업안전 영역에선 중대재해가 발생한 경우 이 원칙에 눈감고 여론을 의식한 융탄폭격성 제재를 내리곤 한다. 산업안전 제재 강도에서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처벌의 나라라고 불리는 싱가포르보다도 제재가 훨씬 강하다.
효율성과 기회비용을 생각지 않고 행정자원을 크게 늘렸지만 행정의 질은 퇴행하고 있다는 비판이 자자하다. 충분한 사전 검토와 실질적 의견수렴과 같은 절차적 정당성 결여로 방향성이 잘못 설정된 탓이다. 방향이 잘못되면 조직, 인력, 예산 확대가 문제를 되레 악화시키는 법이다. 행정자원이 선진국의 3~10배에 이를 정도로 비대해졌는데도 선진국과의 행정역량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는 현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올해 들어와 건설 사망사고가 감소한 건 수주는 증가했지만 취업자 수가 26개월째 감소하고 대형업체에 수주가 쏠리면서 재해에 취약한 중소업체 수주가 축소된 데 기인하는 측면이 크다. 감독인력이 50% 이상 늘고 재해가 다발하는 제조업 취업자 수가 24개월째 감소한 것까지 고려하면 사망사고가 10% 정도 감소한 것을 놓고 정책 효과라는 주장은 궁색하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는 순간 절차적 정의를 요구하는 법치주의는 형해화된다. 노동자 안전을 대의명분으로 삼더라도 절차적 정의를 도외시하는 건 그 자체로 정의를 훼손하고 수많은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이 역사적 교훈이다. 진보를 표방하는 정부가 불의한 방법에 쉽게 기대는 건 진보를 욕되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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