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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우리는 대미 투자를 결정한 정치·외교적 논리와 투자를 집행하는 경제 논리를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이번 대미 투자는 미국의 고관세 통상 압박으로부터 우리 수출기업을 보호하고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대한민국의 생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다. 국제 정치와 외교적 협상의 산물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개별 사업의 선정과 집행은 철저히 경제적 효율성과 수익률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이번 투자는 미국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원조금이나 일방적인 시혜가 아니다. 우리 국민의 소중한 자금이 투입되는 만큼 철저히 수익률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집행돼야 하는 냉정한 비즈니스다.
투자 집행 과정에서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국가의 설비를 맹목적으로 고집하거나 불공정하게 배제하는 행위다. 과거 국산품 우선 구매라는 명분에만 매몰돼 투자 수익률 악화를 자초하고 프로젝트 자체를 실패로 몰고 간 국내외 유수 사례들이 이를 증명한다. 글로벌 인프라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절대 공식은 가장 성능이 우수한 설비를 합리적인 가격에 조달하고 정해진 예산과 공기(工期) 내에 완공할 수 있는 최적의 기업을 파악하는 ‘공정 조달의 원칙’을 사수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기업이 경쟁력과 관계없이 무조건 한국산 설비만을 공급해야 한다고 고집해서도 안 된다. 우리의 요구는 특혜가 아니라 미국 기업이나 글로벌 경쟁사들과 동등하게 겨룰 수 있는 공정한 경쟁 기회다. 특정 국가 제품에 대한 인위적 배제 없이 품질과 가격 경쟁력에 따라 설비를 선택하게 하되 세계 최고 수준의 EPC(설계·조달·시공) 역량을 갖춘 한국 기업들이 정당하게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무대가 보장돼야 한다. 우리 기업들이 오로지 제품과 기술 경쟁력만으로 선택받게 된다면 이번 대미 투자는 한국 제조업의 글로벌 영토를 확장하고 한 단계 더 도약시키는 결정적 기회가 될 것이다.
반대로 만약 미국산 우선 구매 논리에만 휘말려 기술력이 검증된 한국산 제품이 역차별을 받거나 배제되는 불공정 거래가 고착화한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대미 투자가 미국의 공장과 일자리만 늘려주고 국내에는 자금 유출과 산업 공동화라는 치명적인 상처만 남기는 독소 사업으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내 여론은 급격히 악화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이번 대미 투자는 통상 압박을 모면하기 위해 지불하는 일회성 비용에 머물 수도 있고 대한민국 제조업의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그 역사적 갈림길은 3500억 달러라는 거대한 투자 규모 그 자체가 아니라 이를 얼마나 투명하고 공정하게 집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정치적으로 결정된 투자를 철저히 경제적으로 집행하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대미 투자의 진정한 성패는 미국 땅에 얼마를 쏟아부었느냐가 아니라 그 투자의 결과로 대한민국 제조업의 체급이 얼마나 더 강해졌느냐로 준엄하게 평가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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