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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한국시간) 끝난 미국프로골프(PGA) 투어 발스파 챔피언십에서 아쉽게 준우승에 머문 케빈 나(31·타이틀리스트·한국명 나상욱)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에서 억울함부터 토로했다. ‘슬로 플레이어’로 낙인찍힌 데 대한 강한 항의였다.
케빈 나는 어쩌다가 ‘슬로 플레이어’로 찍혔을까. 이 배경을 살피려면 2012년 5월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플레이어스 챔피언십 3라운드에서 케빈 나는 진행이 늦다는 이유로 경고를 받았다. PGA 투어 대표 느림보인 잭 존슨도 짜증을 냈고, 현지 언론까지 질타에 가세했다. 궁지에 몰린 케빈 나는 최종라운드를 단독 선두로 출발했지만 4타를 잃고 공동 7위까지 밀렸다. 결국 맷 쿠차(미국)에게 우승을 내준 케빈 나는 클럽하우스를 떠나기 전 경기속도에 대한 실수를 인정했고 쿠차에겐 사과까지 했다.
그로부터 2년여가 흐른 지난 16일. 3라운드를 마친 케빈 나는 또 한 번 플레이 속도에 대한 비난을 들어야 했다. 상황을 전혀 고려치 않은 일방적인 질타였다. 사정은 이랬다. 앞 조의 팻 페레즈가 잠정구를 치지 않고 공을 찾다가 시간이 지체됐고, 동반자 로버트 개리거스의 룰 확인시간도 길어졌다. 결국 앞 조와의 간격이 한 홀차로 벌어지자 케빈 나와 개리거스는 경고를 받았다. 그런데 라운드를 마친 후 개리거스의 캐디 브렌트 헨리는 “케빈 나와 함께 경기하는 것은 불공정하다”며 화살을 케빈 나에게 돌렸다. “느린 경기 진행이 리듬을 빼앗는다. 우리는 마치 뛰어다니는 것처럼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미국 언론들도 일제히 동참했다.
대회 마지막 날. 케빈 나는 6~8번홀에서 4타를 까먹는 바람에 1타 차 준우승으로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그리고 작정한 듯 불만을 쏟아냈다. 그는 “나는 오늘 매 홀 앞 조가 그린을 벗어나는 모습을 지켜본 후 두 번째 샷을 했다. 늦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러니 앞으론 ‘슬로 플레이어’라고 얘기하지 말아달라”고 일갈했다. 갤러리들의 응원이 쏟아졌고, SNS에서도 지지하는 글이 넘쳐났다. 이슈를 노린 미국 언론의 먹잇감이 돼서는 안 된다는 내용도 적잖았다.
케빈 나의 친형인 나상현 SBS골프 해설위원은 “현지 중계를 보면 인종차별적인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이슈를 노린 미국 언론의 말도 안되는 행태다”며 “올해 6개 대회에서 톱10을 세 번이나 했다. 우승이 멀지 않아 보인다. 모든 논란은 실력으로 잠재우면 된다”고 진심 어린 조언을 했다.
‘케빈’보다는 한국이름 ‘상욱’으로 불리길 원하는 케빈 나는 비록 ‘좀 늦었을지언정’ 끈기만큼은 투어 최상급이다. 2004년 PGA 투어 데뷔 후 한 번도 시드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형이 중계하는 동안 반드시 우승하겠다”는 바람이 올해 꼭 이뤄지길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