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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무신사의 비상 경영은 이례적이다. 무신사는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 1조 2427억원, 영업이익 1028억원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거래액도 4조 5000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다. 그러나 올해 1분기 실적이 목표치를 미달하면서 조기 위기 대응에 나섰다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업계는 무신사의 비상 경영 선언을 전반적인 시장 냉각 기류를 보여주는 단면으로 보고 있다. 국내 패션 플랫폼 1위 라이징 스타로 평가받던 무신사도 올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느꼈다는 얘기다. 실제로 국내 패션 기업 전반은 내수 침체, 글로벌 공급망 불안, 원부자재 가격 인상, 이상 기후 등 복합적인 악재에 시달리고 있다. 이달 말 1분기 실적을 발표하는 삼성물산 패션부문, LF(093050), 신세계인터내셔날(031430), 코오롱FNC 등 주요 기업들도 전년보다 실적이 감소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많다.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을 넘어 고착화하고 있는 것도 업계 부담 요인이다. 원부자재 수입 가격은 물론 글로벌 본사와의 거래, 대금 정산 등에서 환차손이 발생하고 있다. 특히 수입 브랜드 의존도가 높은 기업들은 환율 인상분을 소비자가격에 전가해 가격을 인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신세계인터내셔날 관계자는 “글로벌 브랜드 본사 가격 정책에 따라 국내만 가격을 올리기는 어려워 고환율에 따른 마진 감소를 감내하고 있는 중”이라며 “하반기부터는 어려움이 더 커질 것 같다”고 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관계자 역시 “최근 환율이 하락하는 추세가 보여 내부적으로 안도하는 분위기가 있다”면서도 “고환율로 수입 브랜드 상품 가격 책정에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이런 악재가 중가·중견 브랜드에 더 가혹하다는 점이다. 소비 양극화가 뚜렷해지면서 하이엔드로 불리는 명품은 여전히 인기지만 중간 브랜드 가격대는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 반면 SPA(제조·직매형 의류) 브랜드는 저렴한 가격과 빠른 트렌드 대응을 무기로 급성장 중이다. 실제로 에이블리의 지난 3월 SPA 브랜드 거래액은 전년동기대비 106% 증가했으며, 주문 고객 수는 83% 늘었다. 현재 에이블리에는 ‘에잇세컨즈’, ‘지오다노’, ‘로엠’, ‘유니클로’, ‘자라’ 등 SPA 브랜드가 입점해 있다.
패션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단순히 불황 하나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날씨는 예측이 어렵고 환율은 오르기만 하는데 소비자는 지갑을 닫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양극화도 심각하지만 더욱 무서운 건 중가 브랜드들이 대응 전략을 세울 여유조차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