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디스가 16일(현지시간) 미국의 신용등급을 최고등급에서 강등하면서 강조한 핵심 중 하나는 바로 부채의 이자 비용이다. 미국은 지난해만 1조1300억달러(약 1583조원)를 부채 이자 상환에 지출했고 이는 최근 몇 년간 거의 두 배로 늘어난 수치다. 이대로라면 정부는 이자만 갚기 위해서도 추가 차입(국채 발행)이 불가피한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이에 따라 부채규모는 더욱 커지고 이자지출은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어느 순간에는 국가가 부채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폭발적으로 악화할 수 있는 상황이 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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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부채 폭탄’은 아직 현실화하지는 않았지만, 재정건전성에 대한 신뢰는 빠르게 악화하고 있다. 현재 누적 연방 부채는 36조 2000억달러(약 5경 730조 원)로, 2019년 23조달러였던 부채가 팬데믹 대응을 계기로 급증하며 불과 5~6년 만에 13조 달러 늘었다. 2035년엔 59조 2000억달러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됐다.
미 의회예산국(CBO)과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GDP 대비 2024년 123.2%에서 2035년 134.8%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같은 기간 이자지출(순이자비용) 역시 세입(수입)의 17.6%에서 21.8%로 확대될 전망이다. 단순히 부채 규모 자체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GDP 성장률을 상회한다는 점이 더욱 우려된다. 2025~2035년 미국 실질 GDP는 연평균 1.8% 내외로 성장하는 반면, 총부채는 연평균 5~6%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현실화하면 미국의 재정 통제 능력에 대한 시장의 의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국의 재정위험이 이미 충분히 알려진 사안이기 때문에, 무디스의 강등이 국채금리에 즉각적인 충격을 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실제 무디스는 등급을 강등하면서도 “미국 경제의 규모, 회복력, 역동성, 그리고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를 고려하면 여전히 탁월한 신용 강점이 있다”며 향후 전망은 ‘부정적’에서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미국 행정부와 의회가 부채 감축에 적극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은 지속적인 리스크 요인으로 지적된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는 2017년 감세법 연장을 포함한 세제 개편을 추진 중이며, 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하원 세입위원회에서 마련한 예산 초안이 통과되면 3조3000달러(약 4622조원)의 부채가 추가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트럼프 측은 감세 연장이 경제를 활성화하고 세수를 늘릴 것이라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구체적인 재정 건전화 대책은 상당히 미약한 상황이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정부효율부가 지금까지 삭감한 예산은 약 1630억 달러에 불과하며, 4월 관세 수입도 163억 달러에 그쳤다. 이처럼 세입 기반이 취약한 상황에서의 감세는 재정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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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행정부가 이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은 의회 청문회에서 “미국의 부채 수치는 정말로 위협적”이라며 “위기가 발생하면 신용이 사라지며 경제가 갑자기 멈추는 상황이 올 수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그는 장기물 국채금리를 낮추는 방향으로 정책을 유도하겠다고 줄곧 밝혀 왔다.
무디스의 경고에도 불구 백악관은 이를 “정치적 판단”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무디스의 조치를 문제 삼아 신용평가사를 규제하고 면허를 부여하는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조사를 요청하는 보복성 조치가 추진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실제 백악관 공보국장 스티븐 청은 소셜미디어 X에 무디스 애널리틱스 소속 이코노미스트 마크 잔디를 오랫동안 행정부 정책을 비판해온 인물이라고 지목하며 “그의 ‘분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없다. 그는 수차례 틀린 예측을 해왔다”고 주장했다. 잔디는 이번 보고서 작성에는 관여하지 않았지만, 미국 부채 문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해왔던 인물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는 이번 신용등급 강등을 개인적인 모욕으로 받아들일 것이며, 무디스에 대해 보복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