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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피로는 직장 내 괴롭힘과 무관하지 않다. 지속적인 스트레스는 관리자 스스로의 언행을 날카롭게 만들고, 업무 피드백을 공격적하게 하거나, 정서적 위계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또한 갈등 발생 시 “문제 키우지 말자”는 방어적이고 방관적인 태도를 취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은 실무에서 매우 자주 목격된다.
그럼에도 현행 법제는 관리자의 책임만을 강조한다. 근로기준법 제76조의3은 직장 내 괴롭힘이 발생한 경우, 사용자가 지체 없이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적절한 조치를 취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사용자’에 사업주뿐 아니라, 근로자의 인사·급여·후생·노무관리 등 근로조건의 결정 또는 업무상의 명령이나 지휘·감독에 관하여 사업주로부터 일정한 권한과 책임을 부여받은 중간관리자도 포함될 수 있다는 점이다.
현장에서 관리자들을 마주하다 보면, 자기 확신을 상실한 채 침묵하거나, 신고자와의 관계 단절을 택하는 모습을 종종 목격하게 된다. 누구의 잘못인지 판단하기 전에 관리자의 언어와 행위가 왜 그렇게 구조화되는지를 살피는 일이 먼저일 수밖에 없다. 갈등 상황에서 중재자 역할을 기대받는 사람이 스스로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면, 실질적인 예방도 대응도 어렵다.
괴롭힘 없는 조직은 피해자 보호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친 관리자를 방치한 조직은 결국 또 다른 갈등의 출발점이 된다. 직장 내 괴롭힘 문제를 근본적으로 다루기 위해서는, 그 그림자처럼 함께 따라다니는 ‘관리자의 번아웃’이라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법은 책임을 묻지만, 조직은 책임을 감당할 힘을 줘야 한다. 그 간극을 메우는 일이 앞으로 우리가 논의해야 할 다음 과제다.
■강서영 변호사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변호사시험 2회 △캘리포니아대 어바인 로스쿨 방문학자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연구원 책임연구관 △(현)부산여성가족과 평생교육진흥원 자문위원 △(현)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 △(현)법무법인 원 소속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