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지난해 전공의 수련병원 이탈로 의료대란이 이어지고 있을 당시 얘기다. 충남 한 해안가 지역에서 사는 김모씨(가명)는 동네 병원에서 암이 의심된다는 얘기를 들었다. 3기라고 했는데, 수술이 급한 상황이었다. 환우회 카페 등을 찾아보니 이들이 소개하는 이른바 ‘명의’는 죄다 서울에 있었다. 진료한 의료진조차 ‘서울로 가세요’라고 권유했다. 아버지가 아프자 자식들이 부단히 움직였다. 서울 소재 대형병원서 수술받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자리가 없다’는 대답만이 돌아왔다. 김씨 자식들이 기어코 찾은 병원은 집 근처 종합병원이 아닌, 경기도의 한 종합병원이었다. 동네 의료진도, 자식들도 지방에 있는 종합병원은 애초부터 선택지에 넣지 않았다.
 | | 그래픽=이데일리 이미나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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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갈등 기간 전공의 부족으로 서울에 몰렸던 지방 환자가 10%가량 줄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최근 발간한 ‘2024 지역별 의료이용 통계연보’에 의하면 지난해 서울 소재 의료기관에 입원한 타지역 환자는 64만 8089명으로 전년 대비 6만 5680명(9.2%) 감소했다. 인천과 울산을 제외한 주요 광역시 환자들도 감소세를 보였다. 서울과 주요 광역시에 있는 대학 병원 전공의가 대거 빠져나가며 수술 건수가 줄었기 때문이다.
서울과 지방 대병병원에 가지 못한 지방 환자들은 경기·인천 지역 병원으로 향했다. 지난해 인천에 있는 의료기관에 입원한 다른 지역 환자는 전년 대비 5374명(6.97%) 늘어난 45만 7378명이었다. 경기에 있는 의료기관 또한 다른 지역 환자가 전년 대비 3280명(1.12%) 늘어난 179만 7120명을 기록했다.
서울은 상급종합병원이 14개소, 종합병원이 44개소가 있는데 반해 경기도는 각각 상급종합병원이 6개소, 종합병원이 66개소가 있다. 의정갈등 기간은 전공의로부터 상대적으로 유연할 수 있었던 종합병원이 강세를 나타낸 시기로, 종합병원이 많은 경기도에 입원 환자가 몰린 것으로 분석된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지방의대 예방의학과 A 교수는 “전공의 빠져나간 병원을 대신해 400~700병상급 종합병원이 진료지원간호사(PA)를 활용해 수술 건수를 늘렸고, 그 결과 입원 환자도 함께 늘었다”고 설명했다.
환자들 입장에선 자기 집 앞에 있는 종합병원을 먼저 선택할 수도 있겠지만, 그 대신 서울부터 알아보고 자리 없으면 경기·인천 병원을 알아보는 모습을 보였다. 강원도에 있는 의료기관은 지난해 전체 입원 환자가 1만 7034명, 전북 지역은 7813명 줄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지방 환자가 지역 병원을 신뢰하지 않아 쏠림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A 교수는 “서울이 막히니 경기도로 가고, 인천으로 간 거다. 자기 집 앞 병원을 믿지 못해 안 가는 건데 자꾸 쏠림 막으려고 서울만 막아서 될 일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장성인 건강보험정책연구원장은 “결국 빅5 대형병원이 문제가 아니라 되도록 최선의 의료를 이용하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선택의 결과가 이런 형태의 이용양상을 만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정책의 방향은 지역의료 기관의 신뢰를 높이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를 어떻게 할 것인지가 정책의 초점이 돼야 한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역의사제 도입 등 ‘지·필·공(지역·필수·공공의료)’ 강화 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지역의사제는 기존 의대 정원 중 일정 비율을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배정하는 방식이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가 워낙 크다는 점을 인정하고 이러한 현실의 차이를 메우는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