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범준 기자] 서울 시내 한 공동주택에 거주하는 직장인 성모(35)씨는 최근 출근길에 출차 문제로 애를 태웠다. 부족한 공간에 이중 주차한 다른 차량이 사이드 브레이크를 걸어둔 바람에 차량을 밀고 나올 수가 없었다. 이 차량에 남겨진 번호로 연락을 했지만 돌아온 건 “차를 두고 다른 곳으로 나와서 저녁까지 뺄 수가 없다”는 황당한 답변뿐이었다. 성씨는 결국 대중교통으로 부랴부랴 출근했지만 회사에 지각했다. 그는 “이중 주차하고 자리를 뜰 거면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어두든지 안쪽 차량에 출차 여부를 먼저 확인하는 게 당연한 상식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4일 서울 시내 한 아파트 단지 지하주차장에서 주차 공간 부족으로 차량이 빼곡히 이중 주차된 모습.(사진=김범준 기자) |
|
공동주택 또는 상가에서 주차난과 이에 따른 주차 시비는 어제오늘 얘기가 아니다. 4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서울에 등록된 자가용은 약 263만대로, 주택가(단독·공동주택) 주차장 확보율은 평균 약 106.5%다. 산술적으로야 차량 1대당 주차장 1면이 확보된 셈이지만, 세부적으로 보면 서울 426개 행정동 중 155곳(36.4%)은 주택가 주차장 확보율이 100%에 못 미친다.
자치구와 행정동별로 상황이 다른데다, 한 동네에서도 신축 아파트 단지와 구축 연립주택의 입장이 달라 주차난 쏠림 현상이 심한 상황이다. 특히 다가구 연립주택(빌라)과 원룸·오피스텔 밀집 지역, 혹은 구축 아파트 단지는 가구 수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주차공간 때문에 이중·삼중 주차가 당연시 되고 있다. 아예 주차장이 없는 건물 입주자들은 통행에 방해를 주는 이면도로 주차를 일삼는다.
그러다 보니 주차 구역을 두고 입주자 혹은 방문자 등 이웃 간 분쟁도 늘고 있다. 국민권익위에 따르면 사유지 불법주차 민원 건수는 2010년 162건에서 2020년 2만 4817건으로 10년 새 153배 증가했다. 국민신문고 신청 민원 중 불법 주정차 관련 민원도 같은 기간 8450건에서 314만건으로 약 372배 폭증했다.
경찰에 따르면 도로교통법을 적용받는 일반 도로에 이중 주차된 경우에는 경찰 또는 지자체장 등이 해당 차량 소유주에게 이동을 명령할 수 있다. 연락처가 남겨져 있지 않은 경우 차적 조회 등을 통해 연락을 취할 수 있고, 그럼에도 조치가 이뤄지지 않으면 행정 행위를 통해 강제 견인할 수 있다.
문제는 사유지와 이면도로다. 건물 내외부 주차장과 골목길 등은 도로교통법상 도로로 분류되지 않아 경찰이나 지자체에서 단속이나 견인 등의 조치를 할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진입로를 막고 연락을 받지 않거나 개인 사정으로 이동을 거부하는 등 막무가내식으로 나오면 사실상 손을 쓸 방법이 없다. 다만 세입자 등 거주자의 차량이 아닌 경우 형법과 주택법 등을 근거로 주거침입죄 혹은 퇴거불응죄를 적용해 이동을 강제할 수 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공학부 교수는 “관련 법령 근거를 마련해 골목길에서도 범칙금과 견인 등 행정 단속을 강화하고 건물 내 주차 면수 의무 비율 확대, 거주자 우선 주차구역 공유와 담장 대신 주차 공간 마련 시 인센티브 제공 등 ‘당근과 채찍’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운전자 시민의식 함양을 위한 교육·계도적 접근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