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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신하영 기자] 이예림(가명·37) 씨는 내년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들에게 2년 전부터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어렸을 때부터 책을 읽어주면서 한글에 대한 호기심을 키운 것. 이 씨는 “책 읽기를 자주 했더니 여섯 살 때부터 한글을 쓰기 시작했다”라며 “주변 엄마들도 한글은 떼고 초등학교에 입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교육부가 만 5세 입학 추진의 명분으로 삼았던 ‘유아 학력 격차’가 교육부 정책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교육부는 5년 전부터 한글은 초등학교 입학 후 배워도 늦지 않다고 홍보해왔지만, 학교 현장에선 한글을 알고 입학하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 간 학력 격차가 생긴다는 목소리가 크다.
교육부 “한글 모르고 입학해도 된다”
21일 교육부에 따르면 교육부의 ‘한글책임교육’ 정책은 2017년 도입했다. 교육부는 초등학교 입학 후 한글을 배워도 된다며 초등학교 한글 교육 시간을 종전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늘렸다. 이 가운데 75%인 51시간은 1학년 1학기에 배정했다.
요즘 초등학생들은 입학 후 1개월간 적응교재(우리들은 1학년)를 배운 뒤 곧바로 국어·수학·봄 교과서로 수업을 시작한다. ‘봄’ 교과서는 슬기로운생활·바른생활 등의 과목이 포함된 통합교과서다. 아이들이 친숙하게 공부할 수 있도록 교과서 이름을 봄·여름·가을·겨울로 정했으며, 1학기 때는 봄·여름 교과서를 배운다.
물론 교육부도 한글책임교육을 도입하면서 초등 1학년 교과서를 쉽게 만들었다. 긴 문장을 지양하고 그림을 많이 넣은 것이다. 하지만 현장 교사들은 이러한 교과서 개편에도 학력 격차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경기도 일산의 초등학교 교사 이모(47) 씨는 “아무래도 글을 아는 아이는 교사가 교과서를 읽어줄 때 학습 내용을 더 잘 이해하지만, 그렇지 못한 아이는 이해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유치원도 놀이중심…“한글 가르쳐야”
더욱이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만 3∼5세 공통 교육과정)도 2019년부터 놀이 중심으로 바뀌면서 한글 교육을 하지 않고 있다. 놀이·체험활동을 통해 문자에 대한 호기심만 키우고 한글 학습은 초등학교 입학 후 배우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유치원별로 편차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교육부 정책을 비교적 잘 따르는 국공립유치원은 한글학습을 시키지 않는 반면 사립은 원장·교사 재량에 따라 한글을 가르치고 있다.
취학연령의 자녀를 키우는 교사들도 교육부의 한글책임교육을 신뢰하지 않는다. 초등학교 교사 임모(40) 씨는 “올해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입학 전 한글을 가르친 뒤 학교에 보냈다”며 “주변 학부모에게도 한글은 떼고 입학하는 게 좋다고 권한다”고 했다.
교사들은 유치원·어린이집 누리과정에 한글교육을 포함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경기도 부천의 초등교사 이모(49) 씨는 “한글을 모르고 초등학교에 입학한 학생들은 1학년 때부터 자신감을 잃게 된다”며 “유치원·어린이집에서 기초적인 한글 교육을 한 뒤 초등학교에 입학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있다. 유치원·어린이집을 다니지 못하는 극빈층의 경우 한글교육에서 소외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유치원·어린이집을 의무교육과정에 편입시키자는 주장이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만 5세 대상 유아교육을 의무교육으로 바꾸고 한글을 가르친 뒤 초등학교에 입학하도록 해야 학력 격차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도 “취학연령 하향 정책 논란을 계기로 유아교육의 의무교육 편입을 공론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