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유인촌이 돌아왔다

  • 등록 2014-03-07 오전 10:35:09

    수정 2014-03-07 오전 10:35:09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 연극 무대에 다시 섰다. 9년 만이다. ‘화려한 컴백’이라고 하기엔 낯간지럽다. 또 그렇게 부를 정도로 젊지도 않다. 비단옷을 입고 고향에 돌아온 금의환향은 더 더욱 아니다. 그저 ‘돌아 돌아’ 다시 제자리로 온 것이다. “대극장 무대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드러내면서 버티고 설 수 있는 몇 안 되는 한국의 정통 연극배우”로 되돌아 온 것이다.

그는 공직생활 시절 적대적 상황에서 순리와 세속의 상식을 좇아 그 직위에서 정공법으로 처신했건만 오해를 받았다. 차라리 다른 정치인 출신처럼 대충 타협하며 공직을 마쳤으면 상처는 덜 받았을 것이다. 그 적지 않은 몰이해와 편견을 뒤로하고 그는 의연하게 다시 무대에 우뚝 섰다. 그것도 예순셋이란 나이에….

유인촌이 다시 선 무대는 ‘홀스또메르’. 러시아 작가 톨스토이의 중편소설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이다. 한때 촉망 받는 경주마였으나 지금은 늙고 병든 말이다. 그 말 (馬)의 입을 빌려 인생사 희로애락과 부침을 이야기한다. 말의 시각으로 인간사를 들여다보는 우화(寓話)다.

1997년 국내 초연 무대 때부터 그가 공직 생활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섰던 연극 무대도 2005년 ‘홀스또메르’였다.

유인촌은 말로 변신했다. 그의 연기에선 세월과 연륜이 묻어났다. 공직생활 전 전성기 때의 연기 그대로다. 무대 장악력도 여전하다. 전혀 녹슬지 않았다. 그의 말처럼 힘은 달리는 듯했으나 인생의 깊이가 느껴지는 혼신의 연기가 실내를 압도했다. 세월만큼이나 감정선이 섬세해지고 여려진 것일까. 절체절명의 순간에 내뿜는 아우라를 느끼게 해준다.

유인촌의 연기에 관한 내공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자세, 그리고 열정에 이의를 달 사람은 별로 없다. 공직시절 그를 폄훼한 진영에서도 “유인촌은 문화예술계인사 가운데 보기 드물게 이론적·실제적 안목을 갖춘 예술인이다. 그는 대학에서 정식으로 연극·영화학을 연구했고 예술대 교수, 아트센터 소장 등을 역임한 인물이다. 또한 우리 시대 최고의 연기파 배우이기도 했다. 임권택 감독의 ‘연산일기’에서 보여준 그의 연기는 지금도 역대 연산군 중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고 할 정도였다.

유인촌은 어떻게 늙어 갈까를 놓고 고민한다. 극 중간에 ‘중후하게 늙을 것인가, 추하게 늙을 것인가’라며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관객을 향해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있지만 그것은 어쩌면 자신에게 향한 질문이기도 하다. 그래서 극중 공작(서태화)과 말 사이의 동병상련은 자연스레 배우 유인촌의 삶과 오버랩된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그 어려운 고민을 관객들에게 자연스럽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한다.

시인 서정주가 시 ‘국화 옆에서’에서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가 울고 먹구름 속에서 천둥도 울었듯이 유인촌은 무대에 다시 서기위해 적대적 상황을 피해 둘러가지 않았고 몰염치한 선동 세력과 타협하지 않았을 지 모른다.

유인촌은 인제 돌아와 누님처럼 거울 앞에 섰다.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중후하게 늙을 것 같다. 연극 배우로 살 것이 분명하니 말이다.

유인촌의 연기는 이달 30일까지 매일 오후 8시부터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내 CGV신한카드아트홀에서 계속된다.

이데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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