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고객님께 특별한 대환대출 상품을 안내해드리려고 연락드렸습니다.”
상대방은 자신 있게 말을 이어갔다. “현재 7.8%라는 매우 낮은 금리로 최대 2600만원까지 대환대출이 가능합니다. 기존 고금리 대출을 정리하실 좋은 기회죠.”
E씨의 마음이 흔들렸다. 기존 대출금의 고금리 부담에 시달리던 E씨에게는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약정 위반입니다” 압박의 시작
대출 신청 절차를 진행하던 E씨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에는 H 직원이라고 소개하는 사람이었다.
“고객님,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목소리에 긴장감이 배어있었다. “기존 대출상품은 대출 실행 후 6개월 이전에 재차 대출을 신청하면 약정 위반에 해당됩니다.”
E씨는 당황했다. 약정 위반? 그런 조건이 있었나 싶었지만 전문가가 그렇게 말하니 의심의 여지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다음 날인 3월 21일, E씨는 지시받은 대로 I 명의 J 계좌로 1470만원을 송금했다. 기존 대출을 정리하고 더 좋은 조건의 대출을 받기 위한 필수 과정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했다. 송금 후 연락이 뜸해졌다. 새로운 대출에 대한 구체적인 안내도 없었다. E씨는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또 다른 피해자, I씨의 등장
같은 시각, I씨에게도 전화가 걸려왔다.
“대출을 받게 해드리겠습니다. 다만 외환거래 내역이 필요합니다.” 상대방은 구체적인 방법을 설명했다. “고객님 계좌로 들어온 돈을 인출해서 외화로 환전한 후 다시 돌려주시면 됩니다. 그러면 외환거래 실적이 생겨서 대출 승인이 가능해집니다.”
복잡하고 이상한 방법 같았지만 대출을 받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I씨. 그는 서울 용산구의 J에 가서 계좌에 들어온 1470만원을 미화 7600달러와 엔화 32만엔으로 환전했다.
I씨는 지시받은 대로 외화 뭉치를 들고 강남역 9번 출구 앞에서 기다렸다. 곧 누군가가 와서 이 돈을 가져가고, 자신의 대출 절차가 마무리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때 한 남성이 다가왔다. 피고인 A씨였다.
“M 팀장님 부탁으로 왔습니다.”
A씨가 외화를 받으려는 순간, I씨는 문득 이상함을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즉시 112에 신고했다.
경찰이 도착했을 때 A씨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그의 손에는 아직 외화 뭉치가 들려있었다.
“체포합니다!”
A씨는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보이스피싱 조직의 ‘현금수거책’으로 활동하며 일당 13만원을 받기로 했던 그의 계획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재판부 “조직적 범죄, 엄중 처벌 필요”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36부(부장판사 이정엽)은 지난달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보이스피싱 범행은 조직적·계획적으로 이루어져 불특정 다수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고 사회 전반에 악영향을 미친다”고 판시했다.
특히 A씨가 이전에 경찰서에서 보이스피싱 관련 조사를 받은 적이 있음에도 다시 범죄에 가담한 점을 중하게 봤다. 다만 미수에 그쳤고 외화가 모두 압수되어 피해자에게 반환될 예정인 점 등을 고려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