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등사 대웅전 주변 풍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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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인천) 글·사진=이데일리 김명상 기자] 서울에서 차로 90분.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넘어섰을 뿐인데 시간은 거꾸로 흐르기 시작한다. 익숙한 도시의 소음이 멀어지고, 시계의 초침마저 느려지는 이곳. 강화도다. 이제부터 빠름은 미덕이 아니다. 잘 가는 사람보다 잘 멈추는 사람이 더 많은 것을 본다. 오늘도 마음 둘 곳을 찾는 이들에게 강화도는 포근한 안식처가 되어준다. 멈춤의 미학이 살아 숨 쉬는 강화도에서 기억과 감각, 고요와 치유를 오롯이 품은 세 곳을 찾았다.
불심과 동심이 교차하는 사찰  | 강화 전등사 전경 (사진=한국관광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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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소수림왕 시절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는 전등사. 이곳은 단순한 불교 유산을 넘어 호국불교의 근본 도량이라는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는 역할을 했고, 병인양요·신미양요 등 국난 때는 국방의 요충지로도 쓰였다. 이를 증명하듯 전등사 대웅전의 기둥과 벽면에는 낙서처럼 보이는 묵서(墨書)가 남아 있다. 1866년에 발발한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조선 병사들의 흔적이다. 무사 귀환과 승리를 염원하던 병사들이 전장의 무운을 빌며 저마다의 이름을 새긴 것이다. 글자마다 몸을 바쳐 나라를 구하겠다는 애국의 신념이 담겨 있는 셈이다.
 | 전등사 대웅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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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대웅전 처마 네 귀퉁이에는 기묘한 조각상이 있다. 벌거벗은 여인이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형태의 나부상(裸婦像)이다. 전통 사찰에서 보기 드문 형식이라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설화에 따르면 대웅전을 중수하던 당시 도편수가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여인을 원망하며 새겼다고 한다. 영원히 무거운 짐을 지는 고통을 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그러나 경내를 안내하던 전등사의 주지인 여암 스님의 해석은 이와 좀 다르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새겨진 나부상은 바로 우리 중생의 다양한 모습이라고 봅니다. 사람마다 탐욕, 분노, 어리석음, 이른바 ‘탐진치(貪瞋癡)’를 품고 살아가죠. 저 나부상은 ‘무엇을 내려놓아야 진정으로 자유로울 수 있을까’를 되묻게 합니다. 겉모습은 벌거벗은 여인이지만, 사실은 우리 각자의 번뇌를 떠받들고 있는 형상인 것이죠.”
 | 전등사 내에 있는 어린 왕자 조각상. 당초 미술 전시를 위해 들여왔으나 행사 이후 사찰 측에서 매입한 것이 여러 개 남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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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에는 눈길을 끄는 또 다른 이색 조형물이 있다. 바로 ‘어린 왕자’다. 2022년 경내에서 열린 전시회 당시 선보였던 여러 개의 작품을 행사 종료 후 사찰에서 매입한 것이 지금까지 곳곳에 남아 있다. 어린 왕자는 동심과 불심이 공존하는 상징으로, 종교적 공간에 대한 방문객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혀주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예술과 신앙의 조화를 꿈꾸는 전통 사찰 전등사의 진화를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전통에 기반해 미래로 나아가는 양조장
 | 금풍양조장 출입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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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1년 설립된 금풍양조장은 현재 3대째 전통을 이어가고 있는 양조장이다. 과거 ‘술을 빚던 공간’에서 오늘날에는 ‘문화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진화했다. 2024년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신규 우수 웰니스 관광지’로 이름을 올리며 관광 콘텐츠로서의 가능성도 인정받았다.
대표 프로그램 ‘금풍 마스터 클래스’는 단순한 양조 체험을 넘어, 전통주에 담긴 지역성·역사성·미학을 해설과 함께 전달하는 일종의 체험형 전시다. 발효실, 누룩 창고, 10m 깊이의 우물 등 양조장 2층에 원형 그대로 남은 구조물은 근대 주조문화의 산 교육장이기도 하다. 여기에서 참가자들은 막걸리를 빚고, 마시고, 보고, 향기를 기억한다.
금풍양조장에서는 탄산이 거의 없는 막걸리를 생산한다. 일반적으로는 짧은 시간에 빠르게 발효시키지만, 이곳에서는 시간을 들여 천천히 숙성시킨다. 부드러운 목 넘김, 진한 향, 장기 보관 가능성까지 고려한 ‘느림의 기술’은 입소문을 타고 퍼져 나갔다.
 | 금풍양조장에서 만든 판매용 막걸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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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태석 대표는 마케팅 회사 출신이다. 그는 취임 후 금풍양조장을 ‘힙한 양조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쌀 포대를 재활용한 친환경 패키지, 물만 부어 만들 수 있는 밀키트, 감성 굿즈와 로고까지 브랜딩과 실용성을 결합한 전략은 전통 산업의 생존 가능성을 보여준다. 특히 최근 싱가포르의 미쉐린 레스토랑 ‘아키라백’과 협업해 진행한 막걸리 페어링 디너는 전통주 수출의 새 모델로 주목받았다.
 | 쌀 포대를 재활용한 포장지를 들어 보이고 있는 양태석 금풍양조장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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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전통사찰 전등사와 손잡고 ‘금풍 마스터 클래스 X 전등사 티타임’이라는 프로그램도 선보였다. 양조장 체험과 사찰 다실 방문을 하나의 코스로 엮은 이 시도는 지역 간 협업을 통한 콘텐츠 통합의 좋은 사례다. 죽림다원에서의 티타임은 ‘술에서 차로 이어지는 감각의 여정’을 완성한다.
양태석 대표는 “곧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다양한 콘텐츠 개발을 통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양조장이자 복합문화 공간으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말했다.
혼자이지만 외롭지 않은 쉼 ‘잠시섬빌리지’  | ‘2025년 인천 웰니스 관광지’로 선정된 ‘잠시섬빌리지’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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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는 ‘쉼’을 찾아 떠나는 이들에게도 제격이다. 특히 여성 전용 치유 숙소인 ‘잠시섬빌리지’는 단순한 숙박 시설이 아닌 재충전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이다. 인천관광공사가 2024년 웰니스 관광지로 공식 선정하면서 주목받고 있으며, 2박~5박의 프로그램을 통해 관계, 회복, 자기성찰의 경험을 제공한다.
이곳의 특징은 ‘낯선 사람과의 자연스러운 교류’다. 요가, 쿠킹, 글쓰기 등 30여 개의 로컬 기반 클래스는 자신에게 집중하면서도 다른 이들과 정서적 연결을 할 수 있게 돕는다. 개별 객실은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공용 공간에서는 새로운 대화가 시작된다. 때론 혼자, 때론 함께하는 쉼표는 ‘관계 지향적 웰니스’라는 신개념 여행 키워드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기 돌봄 여행에 관심 있는 여성 2030세대를 중심으로 인기가 높으며, 재방문율도 상당하다. ‘여행 이후가 더 달라졌다’는 후기가 이어지는 이유다. 숙박 예약은 ‘강화 유니버스’ 플랫폼에서 가능하며, 프로그램 역시 선택형 구성으로 운영된다.
 | ‘잠시섬빌리지’의 숲 속 요가 프로그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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