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한전진 기자] 롯데그룹의 2026년도 정기 임원인사 시계가 예년보다 한 달가량 앞서 돌아가고 있다. 지난달 말 신세계그룹이 ‘성과주의·신상필벌’ 원칙을 앞세워 이른 인사를 단행한 데 이어 롯데그룹도 내부 임원 평가를 조기 마무리하며 빠른 인사 가능성이 점쳐진다. 불확실한 소비 시장과 구조조정 기조 속에서 과감한 쇄신 가능성을 두고 재계의 이목이 쏠린다.
 | |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위치한 롯데백화점 본점 전경 (사진=롯데백화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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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재계에 따르면 롯데그룹은 이미 지난 8월 임원 인사 평가를 마쳤다. 현재 인사 폭과 시기를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롯데그룹은 통상 10~11월 임원 평가를 거쳐 11월 말~12월 초 인사를 단행해 왔으나 올해는 일정이 한 달 이상 앞당겨질 가능성이 크다. 특히 올 하반기 그룹 VCM(옛 사장단 회의)을 처음으로 1박 2일 일정으로 진행하는 등 긴장감이 높아진 가운데, 신동빈 롯데 회장은 비상경영 체제를 이어가며 “성과에 따른 보상과 책임”을 재차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인사 관심의 초점은 지주와 유통군 핵심 인물들의 거취다. 그룹 컨트롤타워를 맡고 있는 이동우 롯데지주 부회장은 비상경영 체제의 핵심 인물로, 신 회장의 신임이 두텁다는 평가다. 지주 조직 안정성과 대외 신뢰 확보가 중요한 만큼 유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 중론이다. 다만 일선 사업군에서는 실적 부진 계열사를 중심으로 인적 쇄신이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김상현 롯데쇼핑(023530) 부회장은 전반적인 수익성 방어에선 성과를 냈다는 평가다. 지난해 롯데쇼핑은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7% 감소했지만, 올해 상반기엔 10% 이상 개선되며 체질 안정에 기여했다. 그룹 내 입지와 해외 네트워크를 감안하면 유임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다. 다만 오프라인 부문 부진이 여전히 이어지는 만큼, 조직 체계의 일부 조정 가능성은 열려 있다.
정준호 롯데백화점 대표는 2022년 취임 이후 점포 효율화와 브랜드 리뉴얼을 추진했으나, 타임빌라스 등 대형 프로젝트의 체감 성과가 미비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외형 방어엔 성공했지만 미래 성장 동력이 부족하다는 평가 속에 교체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반면 강성현 롯데마트·슈퍼 대표는 영국 리테일 테크 기업 오카도(Ocado)와의 협업을 앞두고 온라인 물류 혁신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해외사업 확대와 구조조정 마무리 국면을 고려하면 유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김동하 롯데면세점 대표는 수익성 중심 경영으로 올해 2분기 국내 면세업계 ‘빅4’(신라·신세계·현대) 가운데 유일하게 흑자를 냈다. 유커(중국인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이 시작된 상황에서 실적 방어력을 인정받으며 유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반면 박익진 롯데온 대표는 2023년 취임 이후 온라인 플랫폼 효율화를 주도했으나 뚜렷한 반등은 만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트래픽 정체와 수익 구조 개선 지연으로 입지 유지가 어려울 수 있다는 평가다.
이영구 롯데그룹 식품군 총괄대표 부회장은 지난해 고강도 인적 쇄신을 단행한 2025년 정기 인사에서 자리를 지킨 핵심 임원이다. 올해도 식품군 실적을 두고 평가가 엇갈리지만 뚜렷한 후임 후보군이 부각되지 않아 유임 가능성이 점쳐진다. 남창희 롯데하이마트 대표 역시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중심의 구조조정을 이어온 점이 평가받으며 교체와 유임 전망이 엇갈린다. 그룹 내부에선 하이마트를 포함한 일부 계열사의 조직 재정비 여부가 이번 인사의 변수로 거론된다.
신 회장의 장남 신유열 롯데지주 미래성장실장(부사장)도 관전 포인트다. 지난해 부사장으로 승진하며 경영 전면에 나선 그는 바이오 등 신성장 사업을 챙기며 존재감을 키워왔다. 앞으로 롯데 3세로서 경영 보폭을 얼마나 넓힐지가 이번 인사의 또 다른 관심사다. 전반적으로 성과주의와 세대교체 가능성이 맞물리며, 이번 인사는 향후 그룹 체제의 변화를 가늠할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신세계가 9월 말 조기 인사를 통해 성과 중심의 기조를 드러낸 만큼, 롯데도 내부적으로 빠른 인사를 위한 일정 조율 가능성이 크다”며 “비상경영 기조 속에서 조직 안정을 우선시하되, 유통이나 온라인 부문을 중심으로 일부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