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양사의 갈등은 SK하이닉스가 한화세미텍의 TC본더 420억원 어치(12대)를 구매키로 하면서 불거졌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거래처 다변화라는 경영활동의 일환이다. 하지만 한화세미텍이 한미반도체와 TC본더 관련 특허소송을 벌이고 있을 뿐만 아니라 TC본더 납품가격도 한화측의 장비를 더 비싸게 구입하면서 갈등이 증폭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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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K하이닉스가 지난달 한화세미텍에 420억원 규모의 TC본더 발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미반도체는 경기도 이천시에 있는 SK하이닉스 HBM 생산 현장에서 엔지니어들을 철수시켰다.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에 공급하던 TC본더 가격도 28% 인상하겠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업계에서는 한미반도체의 엔지니어들이 철수한 것을 두고 사후서비스 차원에서 상주하던 인원을 복귀시킨 것이라는 의견과 양사간 갈등으로 인해 철수시켰다는 의견이 맞서고 있다. 또 TC본더 가격인상 요청과 관련해서도 가격을 올리더라도 한화세미텍의 납품가격과 비슷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TC본더는 HBM 생산과정에서 열과 압력을 가해 D램을 결합하는 장비다. HBM은 여러개의 D램을 수직으로 쌓고 실리콘관통전극(TSV)으로 구멍을 뚫어 연결하다. 이 때 각 칩의 어긋남이 없이 고정하려면 TC본더가 필요하다. HBM의 품질을 결정하는 핵심 장비 중 하나로 꼽힌다.
한미, SK하이닉스 비중 절반 이상…해외고객사 유치 확장
한미반도체 입장에서도 SK하이닉스는 놓칠 수 없는 고객사다. 한미반도체가 HBM 생태계에서 자리매김을 한 데에는 SK하이닉스와의 협력이 절대적이었다. 지난해 매출에서 SK하이닉스와 거래한 비중도 53.6%로 추정된다.
다만 한미반도체는 SK하이닉스 외에도 미국 마이크론 등 판매처가 있다. 대만, 중국 등지에서도 추가 고객사를 찾고 있다. 한미반도체의 1분기 매출 중 해외 고객사 비중이 90%를 기록하기도 했다.
또 한미반도체는 D램을 쌓을 때 접착제로 결합하는 MR-MUF(반도체 칩을 쌓아올린 후 칩과 칩 사이 회로를 보호하기 위해 빈 공간 사이에 액체 형태의 보호재를 주입하고 굳히는 방식) 공정과 TC-NCF(열압착 기반 비전도성접착필름) 공정을 모두 사용할 수 있는 TC본더 장비를 보유하고 있다. SK하이닉스보다 손에 쥔 패가 더 많은 셈이다. 곽동신 한미반도체 회장이 지난달 이례적으로 한화세미텍을 겨냥해 “SK하이닉스로부터 수주받은 건도 결국에는 ‘유야무야, 흐지부지’하게 소량의 수주만 받아가는 형국이 될 것”이라고 공언한 배경이다.
한미·한화 특허소송 결과도 변수
업계 한 관계자는 “한미반도체와 한화세미텍간 특허소송에서 한미측이 승기를 잡는다면 향후 HBM 제조사 공급 과정에서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한미반도체와 SK하이닉스간 갈등으로 한미반도체와 삼성전자(005930)의 협력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미반도체는 지난 2011년 삼성전자 자회사인 세메스를 상대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뒤 거래가 끊겼다. 최근 들어 한미반도체와 삼성이 몇 차례 미팅을 진행하면서 다소 다른 분위기가 감지된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타사와의 협력 가능성은 늘 열려있다”면서도 “연말 공장 증설 전까지는 현재 추가 생산할 여력은 없다”고 했다.
한편 SK하이닉스는 인천의 한미반도체 본사를 방문해 갈등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한미반도체 엔지니어들의 복귀와 장비 구매 등을 논의한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이달 말로 예상되는 SK하이닉스의 5세대 HBM(HBM3E) 제조용 TC본더(60~80대) 결과로 양사의 중장기적 협력관계 여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