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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밤 트루스소셜을 통해 “미국 영화산업은 빠르게 죽어가고 있다. 외국은 세금 인센티브를 통해 우리 제작사들을 빼앗아 가고 있다”고 주장하며 “미국에 들어오는 모든 영화에 100% 관세를 부과하고 싶다”고 밝혔다.
관세를 어떻게 부과할 것인지 아직 구체적인 실행 방법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영화 수입 비용 급증, 소비자 티켓 가격 인상, 글로벌 콘텐츠 제작 위축 등에 대한 우려를 쏟아냈다. 글로벌 콘텐츠 산업의 자유로운 흐름을 위협할 뿐 아니라, 오히려 미국 자국 기업의 수익에도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의 미디어 분석가인 클레어 엔더스는 “트럼프 대통령이 처음으로 서비스 산업을 직접 겨냥했다”며 “영국은 미국과 100년 넘게 영화산업을 공유해온 파트너인데, 이번 조치는 재앙 수준의 타격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은 관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영화·드라마는 물리적 유통이 아닌 OTT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로 스트리밍되는 만큼 ‘수입’의 개념 자체가 모호하기 때문이다. 영국 ITV 전 의장이자 창작산업 정책 자문을 맡은 피터 바잘젯은 “넷플릭스가 영국에서 만든 콘텐츠가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에 유통되는데, 어떤 방식으로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논란이 확산하자 백악관은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미국 경제·국가안보를 보호하고 할리우드를 다시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발표했다.
미국 영화 산업은 지난 수년 간 제작비 절감을 위해 영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 국가들을 주요 촬영지로 활용해 왔다. 이들 국가는 막대한 세제 혜택과 우수한 스태프, 세계적 수준의 인프라를 앞세워 할리우드의 투자처로 급부상했다.
실례로 지난해 영국 내 영화·고예산 TV 드라마 제작비는 56억파운드로 전년 대비 30% 가까이 급증했다. 이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넷플릭스, 애플, 아마존 등 미국 자본이 투입된 프로젝트였다. 호주도 ‘킹덤 오브 더 플래닛 오브 더 에이프스’, ‘더 폴 가이’ 등 대형 프로젝트를 유치하며 관련 세제 혜택을 더욱 확대하는 추세다.
미국영화협회(MPA)에 따르면 2023년 기준 미국 영화·TV 산업은 153억달러의 무역흑자를 기록했다. 226억달러 상당의 수출이 이뤄지며 거의 모든 주요 시장에서 흑자를 냈다. 이는 통신·운송·보험 등 서비스 산업을 모두 뛰어넘는 수치다.
그러나 최근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이 세제 혜택을 경쟁적으로 확대하면서 미국은 제작 유치 경쟁에서 뒤처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영화산업이 할리우드를 떠나버렸다”며 “이는 개빈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의 무능 때문이다”고 맹비난하기도 했다.
이날 미국 뉴욕주식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주는 일제히 떨어졌다. 넷플릭스(-1.9%), 아마존(-1.9%), 파라마운트 글로벌(-1.6%) 등이 하락했다. 넷플릭스는 11거래일 연속 상승세도 끊겼다. 다만 백악관이 아직 최종 결정된 것은 아니라고 밝히면서 낙폭은 제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