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이데일리는 대한민국 2000년생 청년들의 현주소를 파악하기 위한 특별기획을 마련했습니다. 2000년생들이 직면한 문제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국가적, 세계적 문제임을 공론화하고 미국, 일본, 영국, 네덜란드, 독일, 리투아니아, 그리스 청년들의 사례를 통해 공존의 해법을 모색하고자 합니다. 이번 기획이 2000년생 청년들의 진정한 행복 찾기에 길잡이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빌뉴스·카우나스(리투아니아)=이데일리 이지은 기자] 전 세계에서 Z세대(1990년대 중반~2010년대 후반 출생)가 가장 행복한 나라는 어디일까. 이 시대 제일 공신력 있는 행복지수가 가리킨 곳은 ‘G7’에 포함된 서방강국도 ‘복지천국’ 북유럽도 아닌 발트해의 작은 나라 ‘리투아니아’다. 영국 옥스퍼드대 웰빙연구센터가 갤럽, 유엔 지속가능발전솔루션네트워크(UN SDSN)와 발간한 ‘2024년 세계 행복 보고서’에 따르면 리투아니아의 30세 미만 행복도는 조사대상 143개국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한국은 52위(6.503점)다.
 | (그래픽=문승용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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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2010년대 리투아니아는 부동의 자살률 1위인 한국에 대적했던 유일한 나라였다. 자살 시도를 가장 많이 하는 연령층은 10대였고 30세 이하 최대 사망 원인은 자살이었다. 2004년 유럽연합(EU) 가입 이후엔 더 나은 일자리를 위해 해외로 떠나는 청년들이 쏟아져 정부가 골머리를 앓았다. 타지 생활이 어려워 돌아온 이들은 고국에도 정착하지 못하면서 실업률, 범죄율 등이 사회 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이런 변화의 배경에는 ‘기회에 대한 믿음’이 자리한다. 리투아니아는 1991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격변의 세월을 거쳐 이젠 사회·문화적으로 안정기에 접어든 상태다. 핀테크, 레이저 등 IT 기반의 고부가가치 산업을 필두로 경제도 플러스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이데일리가 지난달 21~23일 리투아니아에서 만난 Z세대 청년들은 “청년으로서 리투아니아에서 행복하게 사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라며 “내가 열심히 할 의지만 있다면 지원받을 기회가 있다는 게 동기부여가 된다”고 입을 모았다.
교육 지원 넘치는 대학…“내가 원하는 행복 선택 가능” 리투아니아는 인구 280만명의 소국(小國)이지만 25~34세 10명 중 6명은 고등교육을 받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나라다. 대학교는 대부분 국공립으로 운영되며, 국비 장학금 제도가 잘 마련돼 있어 학생들의 부담 수준은 EU 내에서도 매우 낮은 편이다. 카우나스기술대 (Kauno technologijos universitetas·KTU), 비타우타스마그누스대(Vytauto Didziojo universitetas·VMU) 등 주요 대학교가 모여 있는 ‘카우나스’(Kaunas)는 수도 ‘빌뉴스’(Vilnius)만큼이나 중요한 기능을 담당하는 제2의 도시로 여겨지고 있다.
 | 카우나스기술대 학생들이 지난달 21일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마르티나스 아니카노바스(23)씨, 가비야 가기테(21)씨, 메다 안타나이티테(22)씨, 미글레 치르타우타이테(19)씨.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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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가 지난달 21일 만난 KTU 학생들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연구원, 로켓 위성 개발자, 화이트 해커 등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업 외에도 학회, 인턴십, 아르바이트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중 올해 입학한 새내기 미글레 치르타우타이테(19)씨는 이미 대학생 대상 샌드박스(초기 창업자 지원) 스타트업을 창업한 상태였다. 그는 “원래부터 관심이 있어서 해보고 싶은 일이었는데 대학에 와서 기회를 얻게 됐다”며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도움은 어렵지 않게 받을 수 있기에 나중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지금부터 계획을 세우고 있다”고 설명했다.
 |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위치한 카우나스기술대 사회·인문·예술학부 건물.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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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졸업을 앞둔 메다 안타나이티테(22)씨는 “체코와 폴란드에서 각각 반년씩 살아본 적이 있는데 리투아니아에서는 젊은 사람들이 돈이 많지 않아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게 큰 동기부여라고 느낀다”며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데 모두 완벽하게 이용할 수 없어서 불안할 때도 있다”고 말했다. 석사 1년 차 마르티나스 아니카노바스(23)씨와 학사 3학년 가비야 가기테(21)씨는 “국가에서 ‘우리가 기회를 줄테니 공부를 하라’고 하는 느낌”이라며 “박물관 입장이나 콘서트 관람을 무료로 하게 해주는 문화 행사도 자주 열린다”고 덧붙였다.
최근 리투아니아의 신성장산업이 이공 분야를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인문계 학생들이 체감하는 취업난은 심화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지난달 21일 VMU의 한 강의실에서 역사 수업을 듣던 3~4학년 학생들은 전공을 살려서는 안정적인 직장을 잡기가 어렵다고 토로하면서도 ‘향후 부모 세대보다는 내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는 “당연하다”고 답했다.
대학 4학년인 데이밀레 라마나우스카이테(23)씨는 “과거보다 기회도 대안도 훨씬 더 많아졌다는 점은 우리 세대가 더 행복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라며 “부모님은 그간의 삶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왔다면, 나는 내가 원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고 어떤 행복을 선택할지에 대한 자유가 있다”고 말했다.
 | 리투아니아 카우나스에 위치한 비타우타스마그누스대 다기능 과학 및 교육센터 건물.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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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청년인력 확보 사활…“학생과 기업 간 매개 필요”
리투아니아는 사회보장고용부(socialines apsaugos ir darbo ministerija) 산하에 청년 정책 전담 집행기관인 ‘청년정책원’(Jaunimo reikalu agentura)을 따로 두고 있다. 2003년 ‘청년정책기본법’을 제정하면서 해당 기관의 전신이 만들어졌는데, 구소련 치하에서 벗어난 이후 급격한 체제 전환을 겪으며 청년 실업률과 사회적 고립이 심각해진 게 설립 배경이 됐다. 인구 규모가 작은 탓에 자국 내 인력풀을 확보하는 게 국가 생존의 문제가 된 셈이다.
 | 유어자스 멜쥬카스 청년정책원 국가청년정책과 선임자문관과 다류스 그리갈류나스 청년정책원 국가청년정책과 선임자문관이 지난달 23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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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일 빌뉴스에 위치한 청년정책원 국가청년정책과에서 만난 유어자스 멜쥬카스 선임자문관은 “과거엔 청년들이 취업을 못하는 걸 개인 능력의 문제로 취급했으나, 이젠 청년 실업이 사회 시스템의 문제이며 정부가 전략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다”며 “장기적으로 보면 향후 성장 동력과 재정 여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서 청년들을 노동시장에 안착시키는 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다류스 그리갈류나스 선임자문관은 “2023년 기준 리투아니아에서 취업한 청년의 58%는 자신의 자격이나 전공에 부합하는 일자리를 가진 상태”라며 “다른 EU 국가들의 Z세대와 비교하면 물질적 복지, 급여 수준 등 재정적 자원을 스스로 확보하는 것을 삶의 중요한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런 인식 변화 속 리투아니아 경제의 파이가 커지면서 산학협력이 활발해지고 있다는 점도 Z세대들에게 기회로 작용한다. 발트 지역 내 최대 규모의 과학기술복합단지인 ‘선라이즈 테크 파크’(Sauletekio Tech Parkas)가 대표적이다. 스타트업과 연구 중심 기업, 학계 전문가가 모인 이곳에서는 첨단 분야를 중심으로 기술 상용화와 창업, 연구개발(R&D)이 진행되면서 청년 고용과 신산업 성장을 이끄는 거점이 됐다.
 | 라이마 발츄네 선라이즈 테크 파크 최고경영자(CEO)가 23일 리투아니아 빌뉴스 사무실에서 이데일리와 만나 인터뷰하고 있다.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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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위치한 선라이즈 테크 파크.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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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투아니아 빌뉴스에 위치한 선라이즈 파크 인근의 대학들과 연구기관들. (사진=이지은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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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선라이즈 테크 파크의 최고경영자(CEO)를 맡은 라이마 발츄네 박사는 “20년 전만 해도 청년들이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회사에 잘 보이려 노력했지만 요즘은 오히려 좋은 인재를 구하기 위해 회사끼리 싸우고 있다”이라며 “국가가 경제적 발전을 이루면서 기업환경에 관한 국제 순위가 올라가 스타트업 창업도 활성화되면서 이젠 ‘인재 리쇼어링(국내 복귀)’도 놀랍지 않은 현상이 됐다”고 말했다.
최근 ‘쉬었음 청년’ 문제가 심각해진 한국에는 학문과 산업 간 간극을 메우는 ‘연결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발츄네 박사는 “학계의 아카데믹 언어와 산업 현장의 비즈니스 언어는 차이가 있기 떄문에 학업의 성과가 실질적인 기술 이전이나 창업으로 이어지려면 중간 매개체가 필요하다”며 “이런 구조는 특정 국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 지속 가능한 혁신 생태계 조성을 위한 필수 인프라”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통역 도움=카롤레 뮬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