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톡톡골프)스마일 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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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10-07-29 오후 2:14:42

    수정 2010-07-29 오후 2:14:42

[이데일리 김진영 칼럼니스트] 여보, 여보, 이리 와봐요. 퇴근한 강 부장을 마나님이 열심히 부른다. 뭔 일인가 싶어 한달음에 달려가니 마나님 옆에 웬 만화책이 산더미다.

친구 집에 갔다가 우연히 보고 만화방 뒤지고 뒤져서 찾은 거에요 하며 씩 웃는 마나님.

골프 입문 삼 년 만에 100타를 깨고 어린애처럼 좋아하더니 진짜 어린애가 된 거 아냐? 한심하다는 듯 바라보는 강부장에게 마나님은 아, 일단 한번 읽어보셔 한다.

일본 만화다. 자라면서 워낙 만화를 좋아했고 이현세 선생이 그린 ‘버디’라는 한국 만화도 탐독했던 터라 만화라는 게 어색하지는 않지만 이건, 굳이 다 보지 않아도 ‘골프천재 탄도’라는 제목이 모든 것을 말하는 그런 만화다.

공 날아가는 궤도라는 뜻을 가진 탄도라는 주인공 이름부터가 그렇지 않나. 야구부에서 활동하던 초등학생이 우연히 교장선생님의 스윙과 골프비디오에 감탄, 또 감탄하여 예전에 이름을 날렸던 프로골퍼를 찾아가 골프를 배우게 되는 그런 내용이다. 뻔하게도 그 소년은 천재적인 기질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마나님 왈, 줄거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상황 묘사가 눈길을 끈다나. 과장이 있어서 그렇지 페어웨이와 러프를 휘감아 도는 바람의 싸움이나 그린까지의 거리를 계산할 때 반 발자국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얼마나 큰 결과의 차이를 불러오는지 등이 표현돼 있는데 재미 있단다. 오케이. 그래 한번 읽어 보지 뭐.

마나님은 그 소년이 늘 골프 볼에 웃는 얼굴을 그려 넣고 스마일 볼이라고 부른다면서 자신도 그럴 거라고 당장 펜을 찾는다. 탄도에게 스마일 볼은 살아있는 친구라나. 러프나 해저드에 빠지면 아파하고 슬퍼하니까 그 볼이 늘 웃을 수 있도록 탄도가 한 샷 한 샷 최선을 다한단다.

볼이 친구이니 그냥 휘둘러 패 버리는 게 아니라 부드러운 스윙으로 정확하게 임팩트하도록 노력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 전에 골프가 살아 있는 거 아닌가 싶을 때가 있었거든요. 애들 동화에 나오는 도깨비같이 골퍼들을 골탕먹이는 아주 심술 궂은 그런 거 말에요. 좀 만만하게 생각하면 바로 복수를 하잖아요.

잘 날아가던 볼이 갑자기 푹 고꾸라져서 날아가야 할 거리의 절반밖에 못 간다거나, 갑자기 장갑이 벗겨지거나, 그립이 미끄러지거나, 해저드가 갑자기 너무 신경 쓰인다거나, 잘 올라앉아 있던 티 위의 볼이 스윙하려는 순간 떨어져 버린다거나 기타 등등 이게 모두 골프라는 녀석 장난이라니까요.

뭐라는 거야. 그새 씻고 나온 강부장은 마나님이 웬 귀신 씨나락 까먹는,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 싶으면서도 어느새 만화 책을 집어 들고 있었다.

골프장에 들어서면서 마음 속으로 오늘 잘 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페어웨이랑 그린, 나무랑 벙커, 해저드 등을 바라보면서 오늘 좀 잘 봐달라고 인사한 날은 라운드가 순조로웠던 게 기억났다. 뭐 딱히 그 골프장에 도깨비가 숨어 있어서라기 보다 그렇게 두루 둘러보고 한 마디 인사 건넬 만큼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샷이 안정될 수 있었을 것이다.

서둘러 도착해서 숨 헐떡거리며 티잉 그라운드로 달려간 날이나 동반자나 캐디가 신경 쓰여 혼자 툴툴거린 날은 마나님 말마따나 도깨비에 홀린 것처럼 잘 굴러갔던 공이 홀에 맞고 튕겨 나오기 일쑤였다.

그날부터 며칠, 강 부장은 저녁마다 만화 삼매경에 빠졌다. 마나님은 만화에서 본 스마일 전략을 연습장과 필드에서 실천하느라 애 쓰는 것 같았다. 볼에 웃는 얼굴 그려 넣고 샷 하기 전에 최선을 다해 좋은 데로 보여주마 다짐하고…

그렇게 며칠이 지난 저녁, 마나님이 말했다. 공에 빨간 펜으로 웃는 얼굴 그리는 거는 안 할래. 헤드에 맞아서 잉크가 밀리면서 완전 피 철철 흘리는 얼굴이 되더라고요.

러프에 떨어져서 피 흘리는 볼…으~~
만화에서는 언제나 처음 그린 스마일 표정 그대로인데, 역시 만화랑 현실은 다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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