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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김용운 기자] 호림 윤장섭 성보문화재단 이사장이 지난 15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재계에서 ‘개성상인’으로 불리는 고인은 유화증권과 성보실업을 창립했다. 기업인으로서 족적을 남겼지만 사재를 털어 호림박물관을 세운 문화재 수집가로 명성이 더 높았다. 문화재계는 간송 전형필, 호암 이병철과 더불어 국내 3대 문화재수집가로 평가한다.
1922년 개성에서 태어난 고인은 개성공립상업학교와 보성전문학교 상과를 졸업한 뒤 전공을 살려 사업에 뛰어들었다. 1957년 부동산임대업을 기반을 한 성보실업을 세웠고 1961년 작물보호제를 제조하는 성보화학을 만들어 돈을 벌었다. 1962년에는 증권업에 뛰어들어 유화증권을 설립했다. 유화증권은 창립 이래 이름을 바꾸지 않은 몇 안 되는 증권사다. 1970년대 재계에서 ‘현금왕’이란 별명이 붙을 정도로 많은 재산을 모았음에도 기업 인수나 매매 등을 통해 사업을 확장하지 않아 개성상인의 명예를 지킨다는 평을 들었다. 1979년에는 성보학원과 성보장학회를 설립해 성보중·고등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이후 1981년 개인재산을 출연해 성보문화재단을 설립한 이듬해 자신의 아호를 딴 호림미술관을 서울 강남구 대치동에 개관했다. 이어 1986년 박물관법 시행 때 호림박물관으로 개칭한 뒤 1999년에는 관악구 신림동에 확장·재개관했으며 2009년 강남구 도산대로에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을 열었다. 현재 성보문화재단은 국보 8점, 보물 53점, 서울특별시 지정문화재 11점 등을 소장하고 있다. ‘청화백자매죽문호’(국보 222호), ‘백지묵서묘법연화경’(국보 211호), ‘분청사기박지연어문 편병’(국보 179호) 등이 대표적인 소장품으로 꼽힌다.
일제강점기 우리 문화재를 지킨 간송 선생처럼 고인 역시 가치가 있는 문화재는 값을 깎지 않고 사들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1974년 ‘청화백자매죽문호’를 구입하기 위해 당시 서울 도심 빌딩 한채 가격인 4000만원을 지불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정부로부터 2001년 국민훈장목련장,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2011년에는 명지대에서 미술사학 명예박사학위도 받았다.
유족으로 부인 박정윤 여사와 아들인 재동(성보화학 부회장), 재륜(서울대 교수), 경립(유화증권 회장), 며느리 오윤선(호림박물관장)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실. 발인은 18일 오전 9시, 장지는 경기 고양시 선영이다. 02-3010-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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