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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대동맥 판막이 나이가 들면서 퇴행성 변화로 두꺼워지고 석회화되면 점차 좁아지게 되는데, 이를 대동맥판막 협착증이라고 한다. 이 질환은 실신, 심부전, 협심증은 물론, 급성 심장사까지 유발할 수 있는 위험한 질환이다.
이에 대한 치료로는 ‘경피적 대동맥판막 치환술(TAVI)’이 있다. 이는 70세 이상의 고령이거나 수술 위험성이 높은 중증 대동맥판막 협착증 환자에게 시행되며, 심장 관상동맥에 약물 용출 스텐트를 삽입하는 치료법이다. 가슴을 절개하지 않고 협착된 판막 부위에 인공판막 스텐트를 넣는 방식이다.
최초의 TAVI 시술은 2002년 4월 16일, 프랑스의 알랭 크리비에(Alain Cribier) 박사에 의해 시행되었고, 이후 심각한 대동맥판막 협착증을 앓는 고위험 환자 치료에 새로운 대안으로 자리 잡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서는 여전히 여러 규제와 3,300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시술 기구 비용, 그리고 의료계 내 집단 이기주의 등으로 인해 환자들의 치료 선택권이 충분히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TAVI 시술을 시행할 수 있는 기관에 대해 연간 판막 수술 10건 이상, 흉부외과 전문의 2인 상주, 특정 자격을 갖춘 전문의 상근 등의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흉부외과 의사가 병원에 없거나 연간 수술 건수가 9건이면 시술 자체가 불가능하다. 또 시술을 해오던 순환기내과 의사가 타 의료기관으로 옮기면 시술을 계속할 수 없고, 흉부외과 의사의 이직으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시술이 중단되는 경우도 생긴다.
이는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의료기관 간 무한 경쟁 속에서 대형 병원만 선호하는 환자들의 특성과 맞물려, 지방 의료 붕괴를 더욱 악화시킬 위험이 있다.
현재 K-의료는 판막 질환 치료 분야에서 국제적으로 존재감을 잃고 있다. 예전처럼 수준 높은 논문을 쏟아내던 시절과 달리, 규제가 많은 한국보다는 더 많은 시술 경험과 자유로운 연구 환경을 갖춘 유럽이나 일본을 찾는 해외 의사들이 대다수다.
우리가 머뭇거리는 사이, 해외에서는 이미 삼첨판막 질환, 승모판막 질환까지 포함해 다양한 시도와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제는 의사들에게 자율적인 시술 결정권을 부여하고, 해외 임상지침처럼 보험 적용 대상과 급여 범위를 확대해 환자들에게 치료 선택권을 돌려줘야 한다. 환자 중심의 의료 환경으로 전환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