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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이정훈 기자] “줄줄 새는 정보를 막아라!” 미국 백악관에 비상이 걸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뒤 세계 각국 정상들과 잇달아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그 때마다 통화내용이 언론에 줄줄 새고 있어서다. 범인을 색출하는 한편 정보 유출을 차단할 방법을 찾고 있지만 오히려 더 많은 정보가 빠져나가고 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은 복수의 미국 정부 관료와 전직 관료 등으로부터 취재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가진 통화내용을 보도했다. 그 내용도 민감했다. 지난 2010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러시아가 합의했던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New START’) 연장여부를 묻는 푸틴 대통령의 질문에 트럼프는 이 협정이 무엇인지도 몰라 곁에 있던 보좌관에게 질문했다고 한다. 또 내용을 듣고선 “그 협정은 오바마 전 대통령 때 체결한 몇 가지 나쁜 협정 가운데 하나였다”고 지적하면서 “그 협정은 러시아에게 유리하도록 돼 있다”고 답했다.
신전략핵무기감축협정은 1991년 조지 H. 부시 대통령 시절 당시 소련과 체결한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을 대체하기 위해 체결한 것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위해 상호간에 핵탄두미사일을 탑재할 수 있는 중폭격기와 전략미사일 등을 통틀어 800기로 제한하고 그중 핵탄두를 탑재할 수 있는 미사일도 700기로 한정하는 등 전략핵을 감축하기로 했던 합의였다. 트럼프는 지난 대선 유세과정에서 “핵무기감축협정을 체결할 때 러시아가 미국보다 더 스마트했다. 이 협정으로 인해 러시아는 계속 핵탄두를 개발할 수 있도록 인정해주면서도 미국은 생산하지 못하게 됐다”며 사실과 다른 잘못된 발언을 하기도 했다.
이 두 보도로 인해 호주와 멕시코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례한 언사를 비난하는 여론이 들끓었고 트럼트 대통령과 미 국무부 등은 불씨를 조기에 진화하기 위해 백방으로 뛰었다.
이처럼 최측근 인사가 아니면 알 수 없는 권부의 내밀한 이야기가 새나간 것에 백악관은 당혹스러워했다. 트럼프는 당장 트위터에 “이건 가짜 뉴스”라고 펄쩍 뛰며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에게 “유출자를 색출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트럼프의 선거캠프 자문역을 맡았던 마이클 카푸토는 “유출자를 찾는다고? 그건 방구석에 바퀴벌레가 몇 마리 있는지 일일이 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라고 냉소했다. 이어서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그런 정보 유출은 매우 부끄러운 짓이다. 아직 백악관 내에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 사람들이 일부 남아서 정보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출범한 지 한 달도 안 된 트럼프 행정부에서 내부 극비 정보가 구멍 뚫린 풍선에서처럼 술술 새 나가고 있는 건 이례적이다. 버지니아대 밀러센터 러셀 라일리 교수는 “어느 정부나 정보 유출이 골칫거리였지만 출범 초기부터 야단법석을 떠는 상황은 미국 역사상 전례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내부 기강 해이를 문제삼는 쪽도 있지만 그보다는 관가 내에 팽배한 반(反)트럼프 정서가 초래한 결과로 해석하는 쪽이 우세하다. WP는 정보 유출 사태가 당분간 계속될 수 있지만 이로 인해 국민 알권리가 보장되고 잘못된 정책을 사전에 막을 수 있는 만큼 미국인들에게는 그다지 나쁘지 않은 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