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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선도하는 경제 강국을 만들겠습니다.”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공약 1순위 슬로건이다.
이 후보가 내놓은 21대 대선 경제공약은 K-반도체, K-방산, K-콘텐츠 등 전략산업을 정부 주도로 육성하고, 소상공인 지원과 골목상권 강화를 통해 민생을 살리겠다는 확장 재정형 전략이다. 문제는 언제나 그렇듯 필요한 재원을 어떻게 조달하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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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산업 분야에서는 정부가 직접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고 예산을 투입하는 방식이 특징이다. 이 후보는 공약에 반도체 특별법 제정, 방산 수출 지원체계 구축, 글로벌 콘텐츠 플랫폼 확대, AI·바이오 등 미래산업에 대한 전방위적 투자 계획을 담았다.
이 후보는 재원 조달 방안 중 하나로 국민·기업·정부·연기금 등 모든 경제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국민펀드를 조성하고 국민·기업의 투자금에 대해 소득세·법인세 감면 등 과감한 세제혜택 부여하겠다고 밝혔다.
민생정책은 전국민 대상의 보편지원을 강화하는 쪽이다. 대표적으로 △지역사랑상품권 등 지역화폐 확대 △쌀값 보전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 △자영업자 채무조정 및 재기지원 등이 포함됐다. 대부분이 매년 수조 원 이상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사업이다.
노동정책은 고용 안전망 확대가 핵심이다. 이 후보는 정년연장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추진하고, 주 4.5일제 시범 도입과 전국민 일자리보장제를 공약했다. 전국민 일자리보장제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 플랫폼 노동자, 자영업자, 프리랜서 등 노동 사각지대에 놓인 비정형 근로자들까지 법적 보호망에 포함시키겠다는 계획이다.
재정 확보·입법·노사 협의라는 3단계 장벽을 어떻게 돌파하냐가 관건이다.
자본시장 분야는 △상장기업 특성에 따른 주식시장 재편 및 주주환원 강화 △외국인 투자자 유입 확대를 위한 제도 정비 및 MSCI 선진국지수 편입 적극 추진, △디지털자산 생태계 정비를 통한 산업육성기반 마련 등 원론적인 수준이다.
이재명 후보의 공약이 실제 경제계의 요구와 얼마나 맞닿아 있는지도 관전 포인트다. 대한상공회의소, 한국경영자총협회, 한국무역협회 등 경제 5단체는 최근 100대 정책 제언을 발표했다.
△전략산업 집중 육성 △규제혁신 △노동유연화 △조세 인센티브 확대 등을 핵심 아젠다로 제시했다. 경제 5단체가 대선후보에게 공동으로 정책을 제언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 가운데 반도체·AI·기후기술 등 전략산업에 대한 국가 주도형 투자 확대는 경제계의 요구와 결을 같이한다. 그러나 다른 분야에서는 거리감이 크다.
노동유연화 요구에 대해서는 오히려 65세 정년 연장 법제화, 일하는 사람 권리보장 기본법 제정을 토대로 한 일자리보장제 도입 등과 같이 방향이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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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후보가 내놓은 경제분야 공약 이행에 필요한 연간 재정 규모만 수십조원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쌀값 보전을 위한 양곡관리법 개정 시 연간 4조~6조원, 지역화폐 운영에 약 3조원, 전국민 일자리보장제는 고용노동부의 기존 직접일자리 사업(2024년 약 2조7000억원) 기준과 수혜 인원 확대를 고려할 경우 최소 5조원 이상의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자영업자 채무조정, 재기지원 등 민생안정 대책과 정년연장 등으로 인한 사회보험 재정지출 증가까지 고려하면 연간 추가 재정 부담은 수십조원대로 늘어난다. 아동수당 등 천문학적인 비용이 들어가는 복지분야는 제외한 규모다.
이 같은 추정치는 기획재정부, 고용부, 농식품부 등의 정책자료를 기반으로 한 보수적 추계다. 특히 이들 정책 대부분이 단발성 사업이 아니라 반복적·구조적 지출이라는 점에서 장기적인 재정 부담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후보는 공약 이행을 위해 올해 추가경정예산을 우선 편성한 후 향후 지출 구조조정, 총수입 증가분을 활용해 재원을 조달한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고령화 등으로 인해 정부의 의무 지출이 급증하고 있다는 게 걸림돌이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정부 총지출은 2024년 634.8조원에서 2033년 956.6조원으로 50.7% 늘어난다. 이중 기초연금, 지방교부세, 아동수당 등 의무지출은 같은 기간 339.4조원에서 591.3조원으로 무려 74.2% 폭증한다. 수입은 같은 기간 590.6조원에서 891.9조원으로 증가할 전망이지만, 지출 증가 속도가 더 가파르다. 총수입 증가분을 활용한다는 계획을 실현하기쉽지 않다는 얘기다.
국가 재정에서 의무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절반이 넘는 데다 정부 재량 지출 또한 국가 R&D이나 SOC사업과 같이 감축이 쉽지 않은 예산이 대부분이다. 공무원 임금 동결과 같이 극단적 조치 외에는 지출 구조조정이 성공한 사례가 드문 이유다.
각종 감면 조치 폐지 등 조세지출 축소도 수혜 계층 저항이 크다는 점에서 어려움이 많다. 오히려 이 후보 공약집에는 자녀 수에 비례한 신용카드 소득공제율·공제 한도 상향 추진, 초등학생 예체능학원·체육시설 이용료에 대한 교육비 세액공제 추가 등과 같이 감세 공약이 여럿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