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도 AI가 만든다…UAE, 세계 최초 'AI입법' 선언

[이데일리 이소현 기자] 아랍에미리트(UAE)가 새로운 법률을 만들고 기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 인공지능(AI)을 본격적으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UAE가 수십억 달러를 투자해온 AI 기술을 정부 시스템에 도입하는 것으로 전 세계적에 전례가 없는 과감한 시도로 평가된다.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셰이크(가운데) UAE 부통령이 5일(현지시간) 두바이 메이단 경마장에서 열리는 두바이 월드컵 경마대회에 참석하고 있다.(사진=AFP)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UAE는 ‘입법 AI’ 프로젝트를 총괄할 새로운 정부 조직인 ‘규제정보청(Regulatory Intelligence Office)’ 설립을 승인했다.

두바이 통치자인 셰이크 무함마드 빈 라시드 알 막툼 UAE 부통령 겸 총리는 국영 언론을 통해 “AI 기반의 새로운 입법 시스템은 법을 만드는 방식을 바꾸고, 입법 과정을 더 빠르고 정밀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UAE 정부는 연방법 및 지방법, 판결문, 공공 서비스 자료 등 방대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AI가 사회적·경제적으로 미치는 법률의 영향을 분석하고, 정기적으로 개정안을 제안하는 방식을 구상 중이다.

이를 통해 입법 속도를 대폭 단축하고, 외부 법률 자문 비용을 줄이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내각 회의에서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입법 속도는 기존 대비 최대 70% 빨라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UAE는 석유 이후 시대를 준비하며, AI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해왔다. AI 전문 국부펀드 ‘MGX’를 만들어 300억 달러 규모로 블랙록 AI 인프라 펀드에 참여했고, MGX는 이사회에 AI 옵서버를 배치할 정도다.

UAE의 이러한 시도는 기존 정부들의 AI 활용과는 전혀 다른 수준으로 평가된다. 다른 나라들은 AI를 활용해 입법안 요약이나 공공 서비스 개선 등 행정 효율성 제고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UAE는 AI가 직접 입법 초안을 제안하고 법률 개정 방향을 제시하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 로니 메달리아 코펜하겐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AI를 공동 입법자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는 야심”이라며 “매우 대담한 시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신뢰성 등 여러 문제점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AI가 훈련 데이터에 따라 편향된 판단을 내릴 수 있고,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법을 해석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는 지적에서다. 빈센트 스트라우브 옥스퍼드대 AI 연구원은 “현재의 AI는 여전히 ‘환각’ 현상을 보이며, 신뢰성과 견고성 측면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는 UAE가 AI 산업에 국가적 역량을 쏟아붓고 있기 때문에 가능하단 평가가 나온다. 키건 맥브라이드 옥스퍼드대 인터넷연구소 연구원은 “UAE처럼 권위주의적 체제는 디지털 전환에 있어 민주국가보다 훨씬 더 빠르게 움직일 수 있다”며 “정부 전반에 AI를 실험적으로 도입하기에 유리한 조건”이라고 평가했다.

UAE 정부가 정확히 어떤 AI 시스템을 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하나의 시스템이 아닌 여러 AI 모델을 결합해야 하며, 반드시 강력한 안전장치와 인간의 철저한 감독이 수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컴퓨터과학자인 마리나 드 보스 영국 배스대 교수는 “AI가 제안하는 내용 중 일부는 기계 입장에서는 말이 되지만, 현실 사회에서는 비현실적일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