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법 쟁점 중 하나는 간호조무사의 자격 관련 규정이다. 대한간호조무사협회(간무협) 측은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고졸’로 제한하는 것이 학력 차별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국가공인시험과 달리 간호조무사 시험만 ‘학력 상한’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간협 측은 “간호조무사 합격자 41%는 대졸”이라며 대졸 이상 학력자의 간호조무사 자격을 막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간협과 간무협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약 31만명 회원을 보유한 네이버 카페 ‘전국간호조무사들의모임’에서도 혼란이 이어졌다. ‘대졸은 간호조무사 못해요?’, ‘간호법 통과되면 대졸자들은 간조 못하는 거 맞나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시험 접수할 때 대졸 학력을 숨기고 고졸로 쓰겠다는 댓글도 있었다. 대졸자는 간호조무사 시험에 응시하지 못할까? 간호조무사 학력요건을 둘러싼 그간의 논쟁을 살펴봤다.
△간호학원 다니면 ‘대졸’ 간호조무사 가능
결론부터 말하자면 대졸도 간호조무사가 될 수 있다.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을 규정한 간호법 제 5조를 살펴봤다. 이 조항은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을 규정한 의료법 80조를 그대로 가져왔다. 해당 조항은 응시 자격을 ‘특성화고 간호 관련 학과 졸업자’와 ‘고등학교 졸업자로서 간호조무사양성소 교육 이수자’ 등으로 규정했다.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나온 사람은 간호학원을 다니면 응시 자격을 얻을 수 있다. 즉, 대졸자라고 간호조무사가 되는데 제한을 받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간무협 측은 현행 조항이 간호조무사 학력을 고졸로 가두는 사실상 학력 상한 규정이라는 입장이다. 간무협은 “4년제 대학 보건·의료 관련 학과를 졸업해도 응시 자격이 주어지지 않아 고졸·학원 출신 간호조무사만 양성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부와 여당은 지난달 11일, 간호조무사 학력 규정을 ‘고졸 이상’으로 명시한 간호법 중재안을 제안했다. 이에 간호협회, 한국간호학원협회, 고등학교간호교육협회 등은 반대 입장을 밝혔다. 현재 전문대에 간호학과가 있는 상황에서 간호조무과가 생기면 의료 현장에서 혼란이 생길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간호조무사 학력 요건 논란 돌아보니
지난 15일 김원일 대한간호협회 정책자문위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간호조무사 학력 조항은 보건복지부 2012년 입법예고로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간호조무사 고졸 제한은 직업 선택 자유를 제한한다”며 간호법에 반대하자 이에 반박한 것이다. 이에 조 장관은 간호법 거부권 건의 브리핑에서 간호조무사 학력 조항은 보건복지부가 만든 것 아니냐는 질문에 “2015년에 정부는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철폐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하였으나 간호계의 거센 반발이 있었고, 당시 국회에서 간호조무사의 학력 상한을 없애는 내용은 제외하고 간호 관련 의료법이 통과된 바 있다”라고 답변했다.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논란은 언제부터, 왜 시작됐을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학술지 『보건사회연구』 논문 ‘간호사와 간호조무사의 업무 및 자격관리에 대한 정책결정과정 연구’와 과거 언론 보도를 참고해 간호조무사 학력 응시자격 논란의 과정을 정리했다.
시작은 2010년부터다. 당시 간호조무사 응시자격은 ‘의료법’이 아닌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복지부 장관령)’에 규정돼 있었다. 2010년 4월, ‘간호조무사 및 의료유사업자에 관한 규칙’ 제 4조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에 ‘전문대 간호 관련 학과를 졸업한 자’가 추가됐다. 그러나 2012년, 경기 평택 소재 국제대학교는 법제처로부터 유권해석을 받은 후 간호조무과를 신설하고, 신입생 40명을 받았다. 해당 유권해석은 전문대학에서 2년제 간호조무과 신설 시 간호조무사 자격시험 응시자격 부여가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전문대학에서 간호조무전공을 개설한 사례는 처음이었다.
2012년 8월, 해당 규칙 개정안에 대해 논의한 국무총리실 산하 규제개혁위원회에서는 “자격에 합당한 교육을 이수하는 기준을 설정하면서, 하한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상한(특정 학력)을 제한하는 것은 불합리하다”는 결정이 나왔다.
보건복지부는 규제개혁위원회의 권고를 받아 2015년 8월, 간호인력을 3단계로 개편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기존 간호사-간호조무사 간호인력 체계를 ‘간호사(4년제 대학)-1급 간호지원사(전문대)-2급 간호지원사(특성화고 및 간호학원)’의 3단계로 개편하다는 내용이었다. 개편안에는 간호지원사가 경력을 쌓으면 간호사까지 될 수 있다는 ‘승급’ 내용도 포함됐다. 하지만 이를 둘러싸고 간협, 간무협 뿐만 아니라 특성화고, 간호학원 등에서 반발이 거셌다.
현행 간호조무사 자격은 2015년 12월 의료법 개정의 결과다.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규제개혁위원회 결정에 따른 간호인력개편도 백지화가 됐다. ‘고등학교 졸업 학력 인정자로서 학원의 간호조무사 교습 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는 현행 의료법 80조 간호조무사 응시 자격이 확립된 배경이다.
△의료법 80조 관련 위헌 논란 살펴보니..
의료법 제80조 제1항 위헌 여부를 판단한 헌법재판소 결정도 있었다. 2016년 3월, 전문대 학교 법인과 고등학생 4명은 전문대 간호조무 관련 학과 졸업자를 간호조무사 응시자격에서 제외하는 의료법 80조가 기본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헌법재판소는 학교법인과 학생들의 심판 청구를 모두 각하했다. 학교법인의 청구에 대해서는 의료법 80조가 "전문대 내 간호조무학과 개설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며 청구인 학교 법인이 기본권을 직접 침해받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해당 조항으로 인해 입학생이 많지 않을 수 있으나 이는 "간접적·반사적 불이익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고등학생들의 청구에 대해서는 "고등학생인 청구인 학생들이 전문대의 간호조무 학과에서 학업할 수 있는 지위를 확정적으로 부여받았다고 볼 수 없다"면서 위헌 여부를 다툴 자기관련성을 갖췄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결론적으로 각하 결정이 나왔지만 자기관련성 요건을 근거로 든 만큼 의료법 80조에 대해 본격적으로 심의를 거친 것은 아니라는 한계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