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치영의 메디컬와치] 감기약 속 위장약 꼭 필요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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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재정 갉아 먹는 처방 관행
호흡기 환자 82.5%가 위장약 처방
부작용 방지라지만…"표준 원칙 아냐"
연 2천억 지출…개선 필요성
  • 등록 2026-03-04 오전 8:10:03

    수정 2026-03-04 오전 8:10:03

[이데일리 안치영 기자] 얼마 전 기자는 기침과 가래 증상이 심해 동네 의원을 찾았다. 증상이 쉽게 호전되지 않아 같은 의원을 두 차례 방문했다. 두 번 모두 위장약이 함께 처방됐다. ‘배가 아프다’거나 ‘속이 쓰리다’고 말한 적도 없지만 의사는 “좀 더 강한 약을 처방해주겠다”며 위장약 종류까지 바꿨다.

기자가 감기 증상으로 처방받은 약제(위쪽 사진)와 진료확인서. 약제 중 P-CAB 계열 의약품인 '펙수클루정 40mg(성분명 펙수프라잔)'이 포함돼있다. 진료확인서 병명에는 '식도염을 동반하지 않은 위-식도역류병(K219)'가 포함돼있다. 대부분은 감기에 K코드 항목을 부상병(부가적인 병명)에 표시해놔 처방전에 잘 드러나지 않는다.(사진=안치영 기자)
4일 의료계에 따르면 상당수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감기 증상을 호소하면 위장약을 함께 처방하는 게 공식처럼 이뤄진다. 애엽(쑥을 말린 것) 추출물을 원료로 한 일반의약품부터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에 사용되는 PPI(프로톤펌프억제제), P-CAB(칼륨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 계열 전문의약품까지 종류도 다양하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이러한 관행의 배경으로 과거 약물 부작용 문제를 꼽는다. 과거에는 약물이 상대적으로 ‘독하다’는 인식이 강해 위장 장애를 호소하는 사례가 많아 위장약 병용이 관행이었다. 실제 처방받은 약물 중에는 부신피질 스테로이드제가 포함돼 있었는데 스테로이드제는 위장관 부작용 위험이 있어 위장보호제가 필요할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

감기 치료에 흔히 사용하는 아세트아미노펜(타이레놀) 계열 해열진통제 역시 부작용으로 위장 장애가 보고돼 예방차원에서 위장약을 함께 처방한다. 일부 이비인후과에서도 위식도 역류가 기침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PPI나 P-CAB 계열 의약품을 처방하는 사례도 있다.

다만 모든 환자에게 위장약이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호흡기내과 전문의인 정기석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65세 이상 고령자 △항응고제 복용자 △위출혈 고위험군 등을 제외하면 일반 성인에게 진통제나 항생제 처방시 위장보호제를 일괄적으로 병용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정 이사장은 “진통소염제(NSAIDs)나 항생제를 처방하면서 관행적으로 위장보호제를 함께 처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는 의대에서 가르치는 표준 원칙과 다르다”고 설명했다.

위장보호제 병용 처방은 전국 의료기관에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건보공단이 국민 급여 처방 내역 중 의과 외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위장약 처방 실인원수는 약 4300만명(2024년 기준)으로 전체 인구의 84.0%에 달했다. 약물 처방을 받은 환자 중에서는 91.0%가 위장약을 함께 처방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기 등 호흡기계 질환 환자에서 위장약 처방 비율이 소화기계 환자보다 오히려 높았다. 2024년 기준 호흡기계 환자 3329만명 가운데 82.5%(2746만명)가 위장약을 처방받았다. 이 중 급성 상기도 감염 소위 ‘감기’ 처방전의 63.6%에서 위장약이 포함됐다. 반면 소화기계 질환 환자 1577만명 중 위장약을 처방받은 비율은 78.7%(1241만명)였다.

이러한 관행은 건강보험 재정 부담으로 이어진다. 2024년 전체 위장약 처방 중 호흡계통 질환 관련 처방은 33%인 1억건으로 이에 따른 건강보험 약품비 지출은 약 2000억원으로 집계됐다. 단순 감기 처방에 동반된 위장약으로만 약 603억원의 보험 재정이 사용됐다.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는 대한의사협회 및 관련 학회, 산하 공공기관과 협의하며 개선 방안을 모색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협에서 ‘소화기관용 약제 사용 권장 지침’을 마련했지만 보다 고도화 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있다”며 “의료계 내부 자율 개선과 국민 인식 개선을 병행하고 위장약 과다 처방 기관의 경향을 분석·모니터링해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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