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유출범죄 느는데 재판 장기화에 형량 낮아…"대응 법제 일원화해야"

실형 선고 2021년 15명에서 2023년 31명으로↑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 재판기간 4배 길어
기업 피해회복 지연, 형사사법시스템 신뢰 저하
"다수 법률 중복·불일치…법제 일원화 시급해"
  • 등록 2025-04-28 오후 1:45:11

    수정 2025-04-28 오후 9:49:55

[이데일리 성주원 기자] 지난 2월 법원은 삼성전자 18나노 D램 반도체 기술을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에 넘겨 산업기술유출방지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김모 전 삼성전자 부장에게 징역 7년을 선고했다. 이는 기술유출 범죄에 내려진 가장 무거운 형벌이었다. 다만 삼성전자가 연간 4조~10조 원의 피해를 봤다며 징역 20년을 구형한 검찰과 달리 실제 형량은 14년 줄었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 따르면 국가핵심기술을 국외로 유출한 범죄의 경우 최대 징역 18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기술 유출 범죄가 매년 증가하고 있지만 재판이 장기화하면서 피해 기업의 회복이 제때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기술 유출 범죄는 국가 경쟁력과 안보를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음에도 기술 가치와 실제 형량 간의 괴리에 따른 ‘솜방망이 처벌’ 논란도 끊이지 않고 있다.

기술 유출 범죄 느는데…재판은 하세월

28일 사법정책연구원의 ‘기술 유출 범죄의 심리방식과 양형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기술 유출 범죄 사건은 해마다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실형 선고는 2021년 15명, 2022년 10명, 2023년 31명으로 최근 2년 사이 약 2배 증가했다.

문제는 이러한 사건의 재판 절차가 일반 형사사건에 비해 현저히 길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의 평균 공판기일 횟수는 12.3회로 전체 형사사건 평균인 2.63회의 약 5배에 달한다. 평균 처리 기간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사건은 구속 21.8개월, 불구속 23.6개월로 전체 형사사건(구속 4개월, 불구속 6.2개월)보다 약 4배 길다. 이처럼 장기화된 재판 과정은 기업의 피해 회복을 지연시키고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저하시키는 요인이 된다.

지난 2023년 2월부터 2년간 사법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겸임하며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김종근(사법연수원 34기) 수원지법 부장판사는 “기술 유출 범죄는 단순한 기업 간의 경쟁 이슈를 넘어 국가 경쟁력, 나아가 안보와도 직결되는 심각한 문제”라며 “기술적 쟁점이 복잡한데 반해 재판부의 기술 이해도가 제한적이며 증인이나 제출되는 자료가 많다보니 재판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다수 법률 중복·불일치…대응 법제 일원화해야”

기술 유출 범죄가 급증하는 원인은 크게 3가지로 분석됐다. 우선 우리나라는 첨단 기술 산업이 국가 경제의 중추를 이루는 기술 선도국으로서 외국 기업 및 기관의 기술 확보 시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다. 퇴직자나 내부자가 정보에 접근하기 쉬워 유출 경로가 다양해졌다. 뿐만 아니라 기술의 실제 가치에 비해 처벌 수위가 낮아 범죄 억제력이 부족하다는 점도 있다.

김 부장판사는 현행 법체계의 근본적인 문제점도 지적했다. 그는 “우리나라의 기술 유출 범죄 처벌은 부정경쟁방지법, 산업기술보호법, 방산기술보호법 등 다수의 법률에서 규율하고 있다”며 “각 법률의 제·개정이 다른 법률과의 관계를 충분히 고려하지 못한 결과로 중복·불일치가 발생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동일한 취지의 법 개정이 필요한 경우에도 개별 법률별로 법 개정 여부, 통과 시점, 시행 시기 등이 제각기 달라질 수 있어 기술 유출 범죄 대응 체계에 혼란이 발생할 수 있다”며 “효율적이고 실효성 있는 구제를 위해 대응 법제의 일원화 등 한정된 자원을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솜방망이 처벌’ 논란…“객관적 손해액 산정 어려움”

기술 유출 범죄에 대한 실형 선고가 증가함에도 불구하고 이른바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과 관련해 김 부장판사는 “기술 유출 범죄 사건이 발생할 경우 수사기관은 수사 및 기소하는 과정에서 피해 기업에서 임의적으로 산정한 피해 규모를 구체적인 금액으로 내세운다”며 “기술 가치 평가 방법이 매우 다양하고 ‘미래 손실’에 관한 예측이 이뤄져야 하는 등 현실적으로 객관적인 손해액의 산정이 굉장히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최근 기술 유출 범죄에 관해 법원이 중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음에도 이러한 현황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고 있는 사정 역시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기술 유출 피해를 입고도 신고를 꺼리는 문제도 있다. 재판 과정에서 자사의 핵심기술이 공공연히 노출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김 부장판사는 “비공개심리 활성화, 비밀유지명령제도 확대, 피해자 절차참여권 보장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래픽=이데일리 문승용 기자
美, 피해규모 따른 양형…日, 기업정보 보호 제도화

해외 주요국들의 대응 사례를 보면 미국은 연방 차원의 통일된 양형가이드라인을 갖고 있고 피해 규모에 따라 양형단계를 상향하고 있다. 일본은 기술 유출 범죄의 형사소송 과정에 적용되는 비공개심리 등 형사소송절차 특례 조항들을 마련해 피해 기업의 정보가 재판 과정에서 노출되지 않도록 제도화했다.

김 부장판사는 양형 기준 개선과 관련해 “기술 유출 범죄를 규율하는 법률에서 법정형이 상향되고 국가핵심기술의 국외 침해 등 구성요건이 신설돼 기존 양형기준의 수정 필요성이 발생했다”며 “지난해 7월부터 양형 권고 기준을 상향하고 ‘산업기술 등 침해행위’ 유형을 신설한 수정 양형기준이 시행됐다”고 설명했다.

장기적으로는 “피해 규모에 따라 양형을 차등화하도록 하는 미국식 양형기준 정비를 고려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피해 규모를 산정함에 있어 영업비밀의 연구 및 설계비용, 영업비밀의 재생산 비용을 가치로 인정하는 등의 새로운 기술가치평가 모델을 모색하는 것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제언했다.

법원은 신속한 재판으로…정부는 법제 통일성 확보 노력

기술 유출 범죄에 효과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법원, 정부, 기업 등 각 주체의 역할이 중요하다. 김 부장판사는 “법원은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재판으로 위하력(잠재적 범죄인인 일반인에 대한 위협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힘)을 높여야 한다. 정부는 기술 보호 관련 법제의 통일성과 실효성을 확보하고 기술 유출 대응 인프라를 확충해야 한다. 기업은 내부 보안시스템 강화, 내부자 감시체계 정비, 기술 가치 평가 및 관리체계 마련 등 적극적인 예방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기술 유출 재판 장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 전문성을 갖춘 재판부 운영 △기술조사관·전문심리위원 등 전문가 적극 활용 △공판준비절차 충실화 △복잡한 사건의 합의부 심리 등을 주요 개선방안으로 제시했다. 김 부장판사는 “기술 유출 대응은 더 이상 특정 기관만의 과제가 아니다”라며 “각 주체가 제도적 역할을 명확히 수행할 때 비로소 형사사법 시스템의 신뢰성과 실효성을 함께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종근 수원지법 부장판사가 지난해 12월 18일 서울법원종합청사에서 개최된 ‘기술유출범죄 재판절차 및 법제 개선방안’ 콘퍼런스에서 ‘기술유출 범죄 심리절차 개선방안’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사법정책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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