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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월 말 외국인 투자자를 위한 기존 ‘EB-5’ 비자를 골드카드 비자로 대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는 500만달러(약 69억원)를 지불하면 누구나 그린카드 소지자와 동일한 권리를 얻을 것이라고 약속했다.
여기엔 미국에서 영구적으로 일하고 거주할 수 있는 권리와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길이 포함된다. 절차도 EB-5보다 더 빠르고 간편하다. 1990년에 도입된 EB-5는 영주권 취득을 위해 미국 기업에 105만 달러를 투자하고 10개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중국은 최근 몇 년 동안 경제 둔화 등으로 부유층들의 대규모 이탈을 겪고 있다. 국제 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에 따르면 중국에선 2023년 최소 100만달러의 투자가 가능한 자산 보유자가 약 1만 5200명 해외로 이주했다. 사상 최대치다. 지난해에도 억만장자의 해외 유출이 세계에서 가장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중국인들의 골드카드 수요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다. 미국은 중국인들의 해외 이주시 가장 인기가 높은 국가 중 하나다. 실제로 전 세계 EB-5 비자 신청자 가운데 약 70%가 중국인이었다. 2024년 2월 후룬 웰스 리포트에 따르면 중국 본토에서 총자산 1억위안 이상을 보유한 가구는 약 11만가구, 이 중 투자 가능한 자산이 1억위안 이상인 가구는 6만 6000가구로 집계됐다.
그럼에도 중국 부유층들에게 인기가 높지 않다.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불신, 즉 새로운 정책의 세부 사항이 여전히 불분명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미국의 법률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명령을 통해 해당 프로그램을 시작할 권한이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새로운 비자를 발급하거나 EB-5 비자를 취소·변경하려면, 의회 승인을 거쳐 대통령이 서명한 정식 법안으로 제정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불확실성이 많은 부유한 중국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SCMP는 설명했다.
중국 베이징에 본사를 둔 이민 서비스 제공업체 웰트렌드의 잭 징 총괄 매니저는 “일부 고객들이 골드카드에 대해 문의했지만, 프로그램을 둘러싼 모호성을 알게 된 후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아이비리그 의대를 목표로 하는 자녀를 두는 등 일부 고객들 사이에선 확실한 수요가 있다”면서도 “입법적으로 적절한 뒷받침이 없을 가능성 등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중국 초부유층을 끌어들이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미국 내 대부분의 의대는 미국 시민 및 영주권자만 지원할 수 있다.
중국 남부 광저우 출신으로 수억위안의 자산을 보유한 부동산 개발업자 캔디스 멍(Candice Meng)은 트럼프대통령이 제시한 초부유층 대상 골드카드 소식을 듣고 흥미를 느꼈다. 싱가포르 1억위안(약 191억원), 뉴질랜드 6000만위안(약 114억원) 등 다른 나라의 투자 이민 비용과 비교하면 최소 투자금액 500만달러가 합리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멍은 “미중 무역전쟁으로 자녀 유학 비용도 증가했고, 졸업 후 미국에서 취업 전망도 밝지 않다. 팬데믹 기간 중 증가한 반(反)아시아 폭력과 인종차별, 강경한 반이민 정책, 비교적 높은 도시 범죄율 때문에 현재의 미국은 더 이상 살기 좋은 곳이 아닌 것 같다. 총기사건이 일상화하고 거리마다 노숙자가 넘쳐나는 미국에 우리 가족을 보내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중국 상하이 소재 하이웨이즈 법률사무소의 캐시 치앤 변호사는 “미국에 대한 가장 큰 우려는 글로벌 과세와 중국인에 대한 불분명한 태도”라며 “많은 중국 고객들이 미국보다 싱가포르가 더 안전하고 중국인에게 우호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에 싱가포르 이주에 관심을 보인다”고 전했다.
한편 중국 1세대 기업가들의 은퇴 시기가 다가오면서, 향후 10년간 약 20조위안에 달하는 자산이 다음 세대로 이전될 것으로 관측된다. 한 중국인 사업가는 “미국 이주에 500만달러를 쓰느니 중국 내 여러 프로젝트에 투자해 자산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