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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제이슨 앨런은 이미지 생성 AI 미드저니(Midjourney)를 활용해 만든 ‘우주 오페라 극장’로 콜로라도 주립박람회 디지털아트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다. 그러나 2023년 2월, 미국 저작권청(USCO)은 인간 저작성이 결여되었다는 이유로 해당 작품의 저작권 등록을 거부했다. 기술 기반 예술이 제도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현실은, 기술의 진보와 법적 기준 사이의 간극을 여실히 드러낸다.
철학적으로, AI 예술은 여전히 인간 사유의 깊이를 담아내지 못한다. 백남준은 이미 1980년대에 기술을 도구가 아닌 철학적 개입의 매개로 다뤘다. ‘TV 부처’(1974)는 불상과 CCTV를 병치해 기술과 영성의 대화를 시도했고, ‘굿모닝 미스터 오웰’(1984)은 전 세계를 위성으로 연결해 냉전 이념을 무력화했다. 반면 오늘날 AI는 맥락 없이 이미지를 생성할 수는 있어도, 그로 인해 세계와 사유를 연결하지는 못한다.
객관적 데이터도 이를 뒷받침한다. 2023년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과 옥스퍼드 대학의 공동연구는 AI가 보조한 작품은 창의적 독창성 측면에서 평균 25% 낮은 평가를 받았다고 발표했다. 이는 AI가 기계학습을 통해 기존의 스타일을 반복 재현하는 데 강점을 가지나, 의미 생성과 새로운 시선의 제시에 있어 한계가 있음을 입증한다.
문화예술계의 응답도 다양하다. 2024년 퐁피두센터는 ‘아포페니아, 중단들’(Apophenia, Interruptions) 전시를 통해 AI의 오류와 비논리성을 창작 자원으로 활용했다. 홀리 헤른던과 매트 드라이허스트의 ‘I’M HERE’(2023)는 AI의 실패를 감성적 기호로 전환했다. 에릭 보들레르는 네 대의 AI가 만든 무작위 서사로부터 ‘이야기 없음의 이야기들’ 을 구성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도 2024년 ‘인공적인 세계란 무엇인가’를 통해 인간과 기술의 공존 가능성을 실험했다.
교육정책도 철학적 관점을 반영할 필요가 있다. 미국 크리에이티브 스터디즈(CCS)는 AI 사용을 아이디어 구상에만 제한하고, 모든 시각 자료의 출처 표기를 의무화하는 커리큘럼을 운영 중이다. 캐나다 요크대는 디지털 아트 인문융합 프로그램에서 철학, 스토리텔링, 기술을 통합하며 기술을 통한 인간 이해를 교육의 핵심으로 삼는다. 단순한 기술 교육이 아닌 비판적 기술 문해력의 조기 함양이 중요하다.
백남준은 말했다. “예술가는 미래를 사유하는 존재다.” 기술은 정교해지지만, 질문을 던지는 힘은 인간의 몫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빠른 생성이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이다. 예술은 생산이 아니라 사유이며, 그 시작과 끝은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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