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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의 시작은 해방 이후 시행한 한센인 격리정책이다. 소록도 등지에 집단 거주지를 지정하고 거주의 자유를 제한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한센인을 통제하고 억압한 정책이 해방 이후에도 그대로 이어진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한센인에게 정관 수술과 낙태 수술이 강제됐다. 병이 유전된다는 그릇된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한센병은 전염은 될지언정 유전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불법행위에 대한 보상과 배상의 물꼬를 튼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다.
일본 구마모토지방재판소가 2001년 5월 일본인 한센인에 대한 국가배상을 인정한 것이 계기가 된다. 일본은 즉각 특별법을 제정하고 보상 근거를 마련한다. 그러자 자각 있는 일본 변호사들이 대한변호사협회를 찾아온다. 일제 강점기 한국 한센인 피해자를 위한 발걸음이었다. 이를 계기로 2004년 7월 국내에 한센병 소록도보상청구소송 변호인단이 꾸려졌다.
한국 한센인들이 2005년 11월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에게 항의서한을 보낸다. 일본이 자국 한센인에게 보상하면서, 일제 강점기 한국인 한센인에게 보상하지 않은 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이다. 그러자 일본은 2006년 2월 특별법을 개정하고 한국과 대만 등 한센인에게 보상을 결정한다.
이를 근거로 국내에 한센인에게 보상의 길이 열렸다. 2007년 ‘한센인피해사건의 진상규명 및 피해자생활지원 등에 관한 법률’(한센인사건법)이 마련된 것이다. 그러나 일괄 보상이 빠지고 보상 범위와 규모가 빈약한 한계를 띠었다.
그러나 국가는 불법행위를 인정하지 않고 항소했다. 이후 줄줄이 위자료를 인정하는 판결이 났고, 국가는 번번이 항소해서 배상의 길이 막힌다. 이런 터에 첫 판결이 이날 대법원에서 확정되기까지 2년9개월의 시간이 흐른 것이다. 한국에서 한창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4년 2월, 일본은 약속한 대로 한국 한센인에게 약 800만엔을 보상한 것과 대조된다.
한센인 인권변호단장 박영립 변호사는 “일본은 자국 한센인에게 일괄 배상하는 동안 한국 정부는 눈을 감았다”며 “이번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센인의 고통을 끌어안을 사과와 배상이 이뤄지기를 촉구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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