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현식 기자] “장르가 판타지라면, 뭐든 가능할 테니까요!”
 | (사진=이모셔널씨어터) |
|
뮤지컬 ‘소란스러운 나의 서림에서’(서림에서) 여자 주인공 양희가 미래를 바꿔보겠다는 굳은 결심을 하며 내뱉는 대사다. 일제강점기인 1940년을 살아가는 양희는 만주로 떠난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아시타 서림’을 지키며 독립운동가들을 돕는 인물. ‘서림에서’는 양희가 책을 매개로 4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1980년을 살아가는 청년인 남자 주인공 해준과 소통하는 초현실적 경험을 하는 이야기를 촘촘하게 그려내는 창작 뮤지컬이다.
양희와 해준을 이어주는 매개물은 책. 정확히 말하면 양희가 써내려가고 있는 미완성의 연애소설책이다. 독재정권에 맞서 학생운동을 하는 해준이 몸을 숨기려 찾은 서림에서 양희의 연애소설책을 우연히 발견하는 시점부터 시공간을 초월한 두 사람의 소통이 시작된다.
 | (사진=이모셔널씨어터) |
|
 | (사진=이모셔널씨어터) |
|
물리적 ‘타임 워프’는 이뤄지지 않는다. ‘글의 힘을 믿고 자유를 갈망한다’는 공통분모를 지닌 양희와 해준은 연애소설책을 펜팔삼아 시공간을 초월한 설렘 가득한 대화를 나누며 점차 가까워진다. 이후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성과 소통하는 줄로만 알았던 두 사람이 각자 다른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마법 같은 일의 비밀이 풀린 뒤엔 실패로 끝난 독립운동 작전을 성공시키려는 양희와 해준의 고군분투기로 초점을 바꾼다. 이때부턴 두 사람이 책을 통해 이전보다 훨씬 더 빠르게 소통하는 방법을 깨닫는다는 설정을 더해 전개에 속도를 붙인다. 양희는 해준 덕에 용기를 얻어 더 적극적으로 독립운동에 뛰어들고, 학생운동을 함께하던 선배를 잃은 아픔에 방황하던 해준은 양희를 통해 삶의 의미를 되찾는다.
 | (사진=이모셔널씨어터) |
|
서로 다른 시대를 살아가는 두 남녀가 마음의 거리를 좁혀가는 과정을 아기자기하게 펼쳐내다가 가슴을 웅장하게 하는 의미 있는 독립운동 서사로 방점을 찍는 구성으로 다채로운 재미를 안긴다. 예스러운 책방처럼 감각적으로 꾸민 무대에서 다양한 조명 장치를 활용해 판타지성을 강화하고, 서정적인 음악으로 촘촘한 이야기에 감성을 더한다.
오필영 무대 디자이너가 설립한 공연제작사 이모셔널씨어터가 자체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랩퍼토리’를 통해 개발한 첫 번째 작품이다. 초연에 해당하는 이번 공연에는 양희 역에 이봄소리·이지수·박새힘을, 해준 역에 정욱진·윤은오·임규형을 캐스팅했다. 러닝타임은 인터미션 없이 약 100분, 양희와 해준을 연기하는 단 두 명의 배우가 극을 책임지는 2인극 형태다. 1인 2역까지 소화하는 배우들의 열연을 감상하는 즐거움도 만끽할 수 있다.
지난 8일 대학로 et theatre 1(구 눈빛극장)에서 막을 올렸다. 오프닝 위크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본 공연에 돌입한 ‘서림에서’는 오는 6월 21일까지 관객과 만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