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김겨레 기자] 세계보건기구(WHO)가 미국의 탈퇴로 급격히 예산을 삭감하면서 최소 70개국의 취약계층이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됐다. 미국이 빠진 WHO에 중국이 최대 자금 기여국으로 올라서게 돼 국제 보건 의료 현안에서 중국의 발언권이 확대될 전망이다.
 |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이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AFP) |
|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테드로스 아드하놈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19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세계보건총회에서 “지원 프로그램 삭감으로 최소 70개국 환자들이 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며 “의료 시설은 문을 닫고, 의료진은 일자리를 잃었으며 환자들의 자기부담금이 증가할 위기에 처했다”고 말했다.
오는 27일까지 열리는 올해 세계보건총회의 최대 이슈는 미국의 탈퇴로 인한 WHO 자금 공백이다. 연간 6억달러(약 8300억원)의 적자를 내는 WHO는 향후 2년 내 예산을 21% 줄일 계획이다.
WHO는 내년까지 연간 21억달러(약 2조9000억원)의 예산 계획을 세웠는데, 테드로스 사무총장은 “각국이 국방비로 단 8시간 만에 다 쓰는 돈, 사람을 죽이는 스텔스 폭격기 한 대 값”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예산 절감을 위해 WHO는 구조 조정에 착수했다. 백신 승인, 감염병 대응, 보건 지침 제공 등 핵심 기능은 유지하되, 선진국 내 교육 프로그램 축소 및 사무소 폐쇄, 고위급 관리자 수 감축, 직원 대신 자원봉사자 모집 등의 조치를 검토 중이다. 회원국 분담금 확대와 팬데믹 조약 채택 등을 통해 중장기적인 재정 안정화 방안도 논의하고 있다.
미국은 올해까지 WHO 참여국에 이름을 올렸지만, 이날 연차 총회에는 대표단을 보내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월 WHO 탈퇴를 결정함에 따라 유예 기간을 거쳐 내년부터는 미국이 공식적으로 WHO에서 빠지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WHO가 코로나19 바이러스 확산 당시 중립성을 잃고 중국에 편향적인 대응을 했다고 주장하며 탈퇴를 결정했다. WHO는 정규 예산의 18%를 분담하던 최대 기여국을 잃게 됐다. 미국은 2024~2025년 회계연도 기준 약 9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WHO에 지원할 예정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의 분담금 비중이 기존 15%에서 20%로 상승할 예정이다. 중국이 WHO의 최대 기여국이 되면서 국제 공중보건 안건에 대한 중국의 입김이 세질 전망이다. 중국은 코로나19 확산을 계기로 네팔,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개발도상국에 백신을 제공하는 등 보건 외교를 펼쳐 왔다.
한편, 올해 총회에도 대만은 참관국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중국 정부의 반대로 인해 대만은 2017년 이후 WHO 총회에 참석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미국이 대만을 참관국으로 초청해야 한다고 촉구했지만 이날 대만을 대신해 발언한 서방 국가는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