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이데일리 황영민 기자] 경기주택도시공사(GH)가 ‘고층 모듈러’와 ‘지분적립형 분양’으로 공공주택사업의 판도를 바꾸고 있다. 민선 8기 경기도 출범 이후 택지개발과 산업단지 조성 등 획일화된 기존 사업 방식에서 벗어나, 저출생 극복과 친환경 등 공공주택 정책의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면서다.
 | 경기 수원시 영통구 소재 GH 광교 신사옥 전경.(사진=경기주택도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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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일 이데일리 취재를 종합하면 GH는 최근 하남 교산 A1블록과 수원 광교 A17블록을 묶어서 발주하는 민간참여 공공주택사업 공모를 시작했다. 교산 A1블록은 PC(Precast Concrete·구조체를 공장에서 미리 제작한 뒤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 모듈러 공법을 적용한 스마트건설 실증단지로 조성되며 광교 A17블록은 전국 최초로 지분적립형 분양주택이 도입된다.
공기단축·탄소저감 모듈러 공법 선두주자 모듈러는 기본 골조부터 전기배선, 배관, 욕실, 온돌 등 건축물의 70% 이상을 공장에서 제작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탈현장공법(OSC)이다. 시공기간을 대폭 줄일 뿐만 아니라 건설 폐기물의 90% 이상 재활용이 가능해 탄소배출의 획기적 감소가 가능하다. 또 공장에서 제작되기 때문에 균일한 품질이 보장되며 현장 공사기간 단축으로 산업재해 예방 효과도 거둘 수 있어 건설산업의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GH는 2023년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을 지상 13층 고층 모듈러 주택으로 조성하면서 모듈러 공법의 선구자로 자리매김했다. 13층 이상 모듈러 건축은 세계에서 여섯 번째, 국내에서는 최초 사례다.
국내 건축법상 13층 이상 건물은 내화 기준(불이 나도 버틸 수 있는 시간)을 3시간 이상 충족해야 하는데, 이 경우 공사비가 증가하고 내부면적이 축소되는 등 문제점이 발생한다.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은 모듈러에 1시간 내화성능을 보유한 단열재를 3겹 붙이는 방식으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했다. GH는 이 방식으로 2023 국토대전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한 데 이어 ‘CES 2024’에도 참가하며 건설업계의 화제를 모았다.
 | GH가 국내 최초 13층 이상 고층 모듈러 주택으로 조성한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사진=경기주택도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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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H가 모듈러 공법에 주목한 것은 김세용 전 사장 취임을 기점으로 한다. 김 전 사장은 지난해 2월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모듈러공법이 국내 최초 도입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 선수촌이었다. 올림픽이 끝나고 선수촌을 해체해서 어느 대학 기숙사로 재사용하는 것을 봤다”며 “재건축할 때도 자재를 재활용하고 탄소발생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는 모듈러 주택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모듈러 공법은 경기 RE100을 통해 탄소중립 정책에 앞장서고 있는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도정 방침에도 부합했다. 또 용인 영덕 경기행복주택이라는 고층 모듈러 건축을 성공함으로써 건설산업의 대안을 현실화했다.
GH는 교산 A1블록의 20층·400호 이상을 고층 PC모듈러 구조를 적용해 건설할 예정이다. 이번 단지에는 기존 1~2개 모듈로 구성된 소형 평면에서 벗어나 모듈러 유닛 3~4개가 조합된 중대형 평면도 포함된다. 교산 외에도 경기도 내 3기 신도시 지구별로 모듈러 특화단지를 조성해 2027년 왕숙2지구, 2028년 왕숙1지구, 2030년 과천지구까지 1만 모듈 이상을 공급할 계획이다. 현재 동두천시에는 국내 최고층인 25층 이상 모듈러 공공임대주택을 추진 중이다.
무주택 94%에게 ‘내 집 마련’ 희망을 심다
옛 수원법조타운 부지, 광교 신도시의 마지막 금싸라기 땅에 추진되는 지분적립형 주택은 새로운 공공분양 모델로 무주택자들의 희망이 되고 있다. GH가 전국 최초로 도입하는 지분적립형은 수분양자가 저렴한 분양가로 최초 지분 일부(10~25%)만 취득해 거주하면서 20~30년에 걸쳐 나머지 지분을 분할 취득하는 방식이다. 적금을 붓듯이 집을 마련한다고 해 ‘적금주택’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당초 김세용 전 사장이 SH 사장으로 재임하던 때 ‘연리지홈’에 추진하려다 GH에서 완성단계에 이르렀다.
 | 지분적립형 주택 개념도.(자료=경기주택도시공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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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분적립형 주택은 초기 자금 부담을 크게 덜어내 무주택 실수요자들로부터 각광받고 있다. 지난 4월 GH가 한국리서치에 의뢰해 무주택 경기도민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93.9%가 지분적립형 주택 공급 확대에 찬성하고, 87.8%는 청약 의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서도 지분적립형 주택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해 지난해 2월 종합부동산세법 시행령 개정으로 종부세 과세표준 합산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했다. GH는 광교 A17블록 240세대를 시작으로 광명 학온지구, 북수원 테크노밸리 등 경기기회타운에 지분적립형 주택을 확대한다는 방침이다.
GH 관계자는 “4만 8000세대 공공주택 건설을 비롯해 GH가 수십 년간 쌓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모듈러 공법과 지분적립형 주택 등 건설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사업들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