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데일리 박순엽 기자]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전후 80년을 맞아 과거 정부의 역사 인식을 계승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다만, 이번 발표는 공식 각의(국무회의)를 거친 정부 담화가 아닌 총리 개인 명의의 메시지 형태로 진행됐다.
10일 교도통신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이날 총리 관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전후 80년 소감’을 발표하며 “전후 50년, 60년, 70년 총리 담화를 바탕으로 한 역사 인식을 역대 내각의 입장으로 계승한다”고 말했다.
 | |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사진=로이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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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바 총리는 이번 메시지에서 당시 일본이 전쟁을 막지 못한 이유를 언급하는 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전쟁 전 일본이 헌법상 ‘문민통제’ 제도가 부재했던 점을 지적하며, 의회 기능의 마비와 군의 독주, 그리고 ‘5·15 사건’과 ‘2·26 사건’ 등 정치인 암살 사건들이 민주적 통제의 붕괴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또 언론이 전쟁 지지로 기울고 비판이 봉쇄되면서 국민 여론이 민족주의로 치달았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시바 총리는 “전후에는 헌법에 따라 자위대가 총리의 지휘 아래 두어졌지만, 제도는 운용이 적절하지 않으면 의미를 잃는다”며 “정치가 자위대를 다룰 충분한 능력과 견식을 갖추고, 무책임한 포퓰리즘에 굴복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언론은 정부의 판단을 감시하는 역할을 잃지 말고, 상업주의나 편협한 내셔널리즘에 빠져선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이 모든 것의 기반은 역사로부터 배우는 자세”라며 “과거를 직시하는 용기와 성실함, 타인의 주장을 경청하는 관용이야말로 진정한 리버럴리즘과 건전한 민주주의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이시바 총리는 “전쟁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있는 지금,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이 평화의 의미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다음 세대에 전해야 한다”며 “전쟁의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국민과 함께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일본 정부는 전후 50년인 1995년을 기점으로 10년마다 8월 15일 패전일을 전후해 총리 담화를 발표해 왔다.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총리는 전후 50년 담화에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전후 60년 담화에서 각각 식민지 지배와 침략에 대한 사죄와 반성의 뜻을 공식적으로 표명했다.
반면, 아베 신조 전 총리는 2015년 발표한 전후 70년 담화에서 “우리나라는 지난 대전에서의 행동에 대해 반복적으로 통절한 반성과 진심 어린 사죄의 마음을 표해 왔다”며 ‘과거형’ 표현을 사용하고, “후세에 사죄의 숙명을 짊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해 논란을 낳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