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이데일리 김상윤 특파원] 36세 젊은 나이로 미국 역사상 최연소 대선후보에 올랐던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은 세 차례나 대통령 선거에서 패배한 정치인이었다. 그러나 그는 기업가와 부유층의 횡포에 맞서 서민,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헌신한 인물로 꼽힌다. 그는 1913년 우드로 윌슨 미 28대 대통령을 지지하며 국무장관에 올랐지만, 1차 세계대전에 대비해 군사 지출을 늘리려는 윌슨의 정책에 반대하며 즉각 사임했다. 국가는 총(guns)이 아니라 버터(butter)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미국이 군사력 확대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민간 경제와 복지를 우선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이 개념은 1936년, 히틀러의 최측근인 나치 독일의 지도자 헤르만 괴링에 의해 전혀 다른 의미로 다시 등장했다. “총이 우리를 강하게 만들지만, 버터는 우리를 뚱뚱하게 만들 뿐이다.” 괴링은 국민들이 생활고를 감내하면서도 전쟁 준비를 지지하라는 메시지를 던졌다. 그의 발언에 힘입어 1차 대전서 패배한 독일은 빠르게 재무장에 나섰고 결국 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다.
그로부터 수십 년 후, 현대 경제학의 거장 폴 새뮤얼슨은 이후 ‘총과 버터’ 개념을 단순한 정치적 수사가 아니라 경제학 모델로 체계화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국가가 군비(총) 지출을 늘리면 민간 경제(버터)에 투입할 자원이 줄어든다. 즉, 국가가 가진 한정된 자원을 국방과 경제 성장 중 어디에 배분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딜레마를 설명하는 개념이 됐다.
도널드 트럼프 보호무역 정책은 겉보기엔 ‘버터’를 위한 정책으로 보인다. 그는 관세부과를 통해 제조업을 되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며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트럼프의 무역정책은 경제적 번영(버터)를 얻기 위해 군사적·정치적 압박(총)을 휘두르는 방식에 가깝다.
그는 관세를 무기화해 경쟁국뿐만 아니라 동맹국도 압박하고 있다. 경제 협력보다는 힘을 앞세운 강압적 전략을 구사한다. 캐나다 온타리오 주의 더그 포드 주지사는 트럼프의 관세에 맞서 미국으로 수출하는 전력 요금에 25% 할증을 적용하며 저항했지만, 결국 굴복했다. 트럼프가 철강과 알루미늄에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압박하자 대응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관세정책은 경제적 번영으로도 이어지기 어렵다. 미국의 제조업 쇠퇴는 관세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자동차, 조선 등 전통제조업이 경쟁력을 잃은 것은 기술혁신을 이루지 못한 결과이지 상대국이 관세로 수입을 막아선 탓이 아니다. 일자리 감소 역시 자동화 및 기술 발전으로 인해 구조적으로 발생한 현상으로 봐야 한다. 오히려 관세로 인한 소비자물가가 상승할 우려가 커지고 있고 경제 전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미 시장은 미국 경제가 둔화하고 있고, 장기적으로는 경기 침체까지 올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하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소련, 나치 독일, 러시아 등 군비 확장(총)에 과도하게 집중한 경제는 지속 가능하지 않았다. ‘총’을 이용해 ‘버터’를 얻으려는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는 경제적 혼란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