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감세안을 ‘크고 아름다운 법안’(Big, Beautiful Bill)이라고 자찬했지만, 시장은 이를 ‘비싸고 위험한 법안’(Big, Risky Bill)으로 냉정하게 평가했다. 투자자들은 이제 미국의 ‘부채 가격’을 본격적으로 계산하기 시작했다. BNY 뉴욕 매크로 전략가인 존 벨리스는 “채권 투자자들은 미국의 재정 악화 가능성을 이제 제대로 반영하기 시작했다”며 “그들은 지금의 트럼프 정책이 마음에 들지 않으며, 더 이상 국채를 사고 싶어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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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현지시간) 뉴욕 채권시장에서 30년 만기 미국 국채 금리는 5.09%에 거래를 마쳤다. 이는 2023년 말 이후 최고치로, 시장 참가자들이 미국의 재정 리스크에 프리미엄(추가적인 보상)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는 강력한 신호다. 더 높은 수익률을 받아야 미 국채를 살 용의가 있다는 의미다. 이는 단순한 금리 상승이 아니라, ‘미국 국채는 무조건 안전하다’는 전제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BMO캐피털마켓의 이안 링겐 금리 전략가는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국채 시장을 워싱턴 정국에 대한 투자자들의 신뢰도 지표로 보고 있다면, 이번 30년물 수익률 급등은 분명히 우려스러운 신호”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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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재정분석기관들은 해당 법안이 향후 10년간 미국 연방정부의 누적 부채를 최소 3조 달러(약 4142조원) 이상 늘릴 것으로 예측한다. 이는 국내총생산(GDP)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다. 이는 결국 더 많은 차입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누적 연방 부채는 36조 2000억달러(약 5경730조 원)로, 2019년 23조달러였던 부채가 팬데믹 대응을 계기로 급증하며 불과 5~6년 만에 13조 달러 늘었다. 2035년엔 59조 2000억달러(약 8경1737조원)까지 불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미 의회예산국(CBO)과 연방예산위원회(CRFB)는 미국의 연방정부 부채가 GDP 대비 2024년 123.2%에서 2035년 134.8%로 급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부채 증가 속도는 GDP성장률을 상회하고 있다. 2025~2035년 미국 실질 GDP는 연평균 1.8% 내외로 성장하는 반면, 총부채는 연평균 5~6%씩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이런 상황에서 지출을 대폭 줄이지 않은 채 무리한 감세가 추진되면서, 시장에서는 ‘이 부채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가 커지고 있는 셈이다. 라이트슨ICAP의 수석 이코노미스트 루 크랜달은 “기존에도 지속 불가능한 예산 경로를 걷고 있었는데, 이제는 볼륨을 더 높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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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디스 신용등급 강등…이제 주식시장에도 영향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불과 며칠 전,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등급인 ‘Aaa’에서 ‘Aa1’으로 한 단계 강등했다. 미국이 명시적인 디폴트(채무불이행)될 가능성은 낮지만, 만성적인 적자와 정치적 교착이 미국의 재정 신뢰도를 갉아먹고 있다는 판단이다. 부채는 쌓여가는데, 정책은 지출을 줄이기는커녕 감세로 달려가는 트럼프 행정부에 경고를 날린 것이다.
JP모건의 글로벌 금리 전략책임자인 제이 배리는 “그동안 둔감하던 주식시장도 이제 재정 리스크를 의식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이날 S&P500은 1.6%, 나스닥은 1.4% 하락했으며, 애플(-2.3%), 아마존·엔비디아·마이크로소프트(-1% 이상) 등도 줄줄이 하락했다.